우리는 흔히 감동이 메말라 가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푸념섞인 말을 종종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주의는 팽배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고 인터넷이 주도하는 정보화는 쫓아가기 버거울 정도로 초고속화되면서 언제부턴가 우리들 주변에는 자그마한 감동과 사람내음이 차츰 메말라가고 있다. 낯선 사람들과의 투박하고 때론 지루한 만남보다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취향에 맞는 것만을 취할 수 있는 인터넷은 그래서 우리에게 유혹적인 것 같다.
지난 3일 이민100주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할로 파티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기자자격으로 참석했지만 100년전 하와이에 첫발을 내딘 이민선조들의 두려움과 그리움에 가득 찬 눈망울, 검게 탄 주름진 얼굴에 갈라지고 터져 뭉개진 손과 발이 떠오르자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세찬 풍파 견디며 목숨 걸고 건너온 바닷길 여정, 말조차 통하지 않는 답답한 남국의 섬, 뜨겁게 내리쬐는 땡볕아래 막노동, 보름달 바라보며 소리없이 흘리는 눈물, 조국광복 위해 꼬깃꼬깃 모아둔 쌈지돈 건네는 마음…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100년이 흘렀다. 이민선조들이 희망과 절망이 뒤범벅된 눈길로 바라본 저 푸르른 바다와 파아란 하늘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눈길은 예전의 그 눈길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민선조들의 후손들, 학문 연구를 위해 유학 왔던 사람, 7,80년대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이민 왔던 사람 등 하와이에 살고 있는 가지각색의 사람이 공통된 한가지 큰 뜻을 가지고 함께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품을 팔면서 10년을 준비했고 마침내 그 일을 훌륭하게 완수했다. 그리고 그들 덕택으로 나는 억세게도 운좋게 그 감동적인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을 수 있는 주인공으로 무임승차할 수 있었다.
실로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12월의 밤이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한 한인인사가 기증한 국보급의 조선시대 병풍 5점과 사인검이 은은한 한국의 전통미를 풍기며 뒷편에 진열돼 있었고 앞편에는 수줍은 색시모양 병품 한점이 접혀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동안 이민100주년 행사를 위해 애썼던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환한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도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다.
평생 모르며 살아갈 뻔한 사람들이 이민100주년이라는 한 배를 탄 인연으로 이런 운명적인 나눔을 가지게 된 것이라 생각하니 괜시리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간단한 식순에 이어 한인 3세인 젊은 음악가의 바이올린 반주에 따라 아리랑을 불렀다.
100년전 홀로 숨죽여 불렀을 그 아리랑을 우리 후손들은 이민 선조들의 희생 덕택에 함께 소리쳐 부를 수 있었다. 이어 접혀졌던 병풍이 펼쳐지자 수십마리의 기러기가 하늘로 비상을 했다. 마치 우리의 희망과 미래를 매달은 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식은 끝났다.
앞으로 100년 후,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들은 누구도 한인이민 2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진 이 진한 감동의 순간은 100년이 지나더라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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