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아들 쥴리어드 음대 졸업 뒷바라지, 필립식당 정현진씨
“아이들은 제게 신앙과도 같았습니다.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 월마트 신축공사로 한창 시끄러운 마칼로아 스트릿 포니택시회사 근처에 ‘필립식당’이라는 자그마한 한국식당이 있다.
하와이에서 웬만큼 거주한 한인들은 이 길을 지나며 검게 그을린 얼굴에 자전거를 타고 테이크 아웃 음식을 이리저리 배달하던 옆집 아저씨같은 사람을 한두번은 마주친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검은 얼굴의 주인공이 바로 전 필립식당의 대표이자 장래가 유망한 두 청년 바이올린 연주가의 아버지 정현진(사진 56)씨이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그동안 정들었던 하와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뉴욕에서 두 아들과 함께 꾸려나갈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는라 분주하다.
정현진씨가 하와이로 오게 된 경위는 20여년전인 1982년 어머니가 암수술 후 요양하기 위해 형제들과 친척들이 있는 따뜻한 기후의 하와이로 가는 것이 좋다는 말에 두말없이 어린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하와이에 가기로 했다.
그당시 비자를 받을 만한 별다른 방도가 없자 선원으로 취직하여 취업비자를 얻어 하와이에 도착하여 계약이 만료되는 2년동안 뱃사람으로 하와이에서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이민 오기전 정현진씨는 춘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 그런 그가 뱃사람으로 변신하기로 작정한 것은 단지 식구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선원 계약이 끝나자 그는 구두 수선공이 되기로 작심하고 6개월동안 한푼 보수없이 구두수선일을 배웠다. 그러나 친척들의 거센 만류로 끝내 구두 수선업소를 개업하지는 못하고 당시 식당 웨이트레스로 일하던 아내의 뜻에 따라 식당을 인수 1984년 큰아들의 이름을 딴 필립식당으로 개업하여 올해까지 19년동안 필립식당을 운영했다.
정씨는 술을 팔 수 있는 라이센스가 있던 식당이었지만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라이센스를 말소 시키고 식당을 아이들의 바이올린 연습실로 사용하며 필립식당을 통해 두 아들을 줄리어드음대를 졸업시키는 재원을 마련했다.
한국에서부터 가르쳤던 두 아들의 바이올린에 대한 재능이 하와이에 와서 더욱 빛나자 아들의 학교선생들이 보다 나은 음악교육을 위해 본토로 가라고 권유하기까지 했다.
이에 정씨는 1985년 두아들과 함께 45일간의 학교탐방 여행을 떠난다.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서 캐나다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누빈 이들 부자들의 여행은 한마디로 소설의 한 장면이다. 이때 볼티모어에 있는 한 한인교수가 아들들의 재능에 반해 정씨 가족전체를 동부로 초청했지만 노모 곁을 차마 떠날 수 없어 거절했다.
한국정신을 잊지 않게 해주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한글 쓰기와 읽기공부를 열심히 가르친 덕에 지금 장성한 두 아들 모두 읽고 쓰기에 능하다고 한다.
현재 장남은 뉴저스 심포니의 바이올린 연주가이고 둘째 아들은 쥴리아대 음대 졸업예정으로 형과 같은 뉴저지 심포니에서 활동하면서 대학원에서 좀더 공부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현진씨는 “자식들이 자기일을 찾아 기쁘다”며 “아이들이 자신을 모실려고 하는 것을 보니 이제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짧은 시간 만나본 그는 결코 평범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에게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진정한 아버지의 자식사랑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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