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부터 많은 한인들이 샌프란시스코와 중가주 농장지대인 리들리에서 LA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그들 초기 이민자들의 구심점은 바로 대한인 국민회. 초기 한인들의 커뮤니티 센터인 ‘대한인 국민회관’(1368 Jefferson Bl. LA)이 올해 재개관한 것은 이민사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다.
1938년 건립된 ‘대한인 국민회관’은 한인사회의 사랑방, 독립군 지원 전초기지에다 한글과 한국 역사, 영어와 교양 과목까지 가르치던 교육 기관이었다. 미국 정부가 일본인들을 격리 수용할 때 국민회는 한인 증명서를 발행해 일본인과 구별하기도 했다.
이 ‘대한인 국민회관’이 기능마비 30년만에 역사 기념관으로 다시 문을 연 것이다. 국민회관은 1960년대 유학과 신 이민 물결에 밀려 커뮤니티의 뒷전으로 물러난 후 초기이민 노인들의 노인정 역할을 하다가 1970년 들어 문을 닫았었다.
2001년 이민 100주년을 앞둔 한인사회에서 불었던 역사 재정립 운동에 편승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던 대한인 국민회관 발굴 작업은 시작됐다.
한국의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한국 역사학자 이만열씨를 국민회관복원 추진위원장으로 임명해 복원 작업에 불을 지폈다. 수 차례 미국 방문과 관계자 면담, 건물 소유주인 나성 한인연합장로교회와 소속 태평양노회 등을 설득한 끝에 복원에 의견일치를 보았고 2002년 11월 홍명기 밝은 미래재단 이사장을 리더로 한 복원위원회를 조직했다.
이후 한국 도산기념사업회 10만달러와 한국 보훈처의 한화 2억원(미화 17만여달러), 국민회 기관지였던 신한민보 전 발행인 김운하씨의 500달러를 합쳐 27만여달러의 시드머니로 복원 작업을 시작했었다. 이후 이윤복 LA 한국 총영사가 관저에서 한인사회 인사들을 초청한 기금모금 만찬을 개최해 즉석에서 15만달러의 기금을 모아 공사비에 충당했다.
그러나 국민회관 기념관은 운영 문제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올해 회관 재개관에는 성공했지만 원만하고 효율적인 회관운영과 자료 보존 문제 등이 내년의 숙제로 남겨진 것이다. <김정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