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1일 시작된 미 수퍼마켓 노조파업이 11주를 넘겼다. 의료비 부담을 둘러싼 랄프스·본스·앨벗슨등 3대 마켓의 파업은 해를 넘기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다.
마켓 파업이 이처럼 예상밖으로 장기화되자 소비자도 불편하지만 파업 당사자들은 타결책 없는 상황에 지치고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연말인 지난 20일 타운 버몬트와 3가의 본스 마켓 주차장에서 만난 파업 한인 제이 한(36)씨의 얼굴에도 수심이 깊었다.
올해 7월 웨스턴과 7가 랄프스 마켓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한씨는 유치원 다니는 5살짜리 아들과 어머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못 사주게 됐다고 입을 열었다. 다이아몬드바 랄프스에서 3년 등 마켓 경력 10년의 한씨에게 파업은 당장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돌아왔다.
미용사인 부인의 월급으로 생계는 꾸려나가지만 가족을 위해 미니밴을 구입하고, 내년에는 틈틈이 모은 돈으로 부인에게 미용실을 차려주려던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둘째를 가져보려던 꿈도 일시정지 상태.
노조로부터 지급 받는 일주 240달러의 파업 참가비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씨는 가장으로서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부인이 적극 지지해주고는 있지만 일을 하지 않고 피켓을 들고 서있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적 압박과 무기력함에 더해 파업이 길어지면서 이젠 노동자들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씨의 경우 이중언어가 가능한 장점과 마켓 경력, 매니저와의 돈독한 관계 등을 통해 ‘캐시어’로 자리잡기 직전에 일어난 파업이라 더욱 아쉽다. ‘박스보이’와 마켓 내 모든 일을 다 소화하는 ‘세븐티파이버’를 거친 그는 정식 ‘캐시어’만 되면 마켓내 지위가 공고해 진다고 한다.
파업 시작 후 한 달은 매니저가 음식도 가져다주고 격려를 해줬는데 이제는 서로 얼굴 마주보기가 편치 않다. 곧 정식 캐시어가 될 예정이었는데 직장으로 돌아가면 다시 새로운 매니저와 함께 일을 시작해야 하는 일이 까마득하다고 한씨는 직장복귀 후를 더 걱정하는 눈치다.
이젠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에 다니는 친구가 권하는 시큐리티 가드나 티켓 판매직에도 귀가 솔깃하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합니다. 이렇게 서있지 말고 일을 해야 하는데 죽겠습니다.라며 연말의 텅빈 마켓 주차장에서 한씨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배형직 기자> hjba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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