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6학년 때 오신 새어머니와 나는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방황하던 청소년기에, 나의 학교 성적은 곤두박질 쳐서 꼴찌도 해봤고, 겨우 대학을 간 후에는 반대 속의 결혼을 한 탓에 가난과 싸워야 했다. 그 후 손가락 세 개를 잃고 태어난 다은이를 보며 또 한번 눈물을 흘렸었고, 유학 후에는 힘든 공부와 이국 생활에 하루도 잠을 편히 자지 못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주변의 반대 속에 했던 재수 끝에 대학에 합격했을 때, 사랑하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또 힘든 과정을 거쳐 결혼했을 때, 원서를 냈던 학교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아 유학을 하게 되었을 때 등 기쁜 순간도 많았음을 나는 잘 안다.
11년 전에 태어났던 다은이는 오른손 가운데 세손가락이 없었고 오른발 아킬레스 건이 짧아 나를 한없이 슬프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 다은이는 나의 자랑이 되었다. 다은이는 지금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변한 것은 없다. 달라진 것도 없다. 똑같은 다은이의 손을 보며 11년 전에는 그토록 괴로워했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그 아이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정말 행복과 고난은 함께 있다.
서투른 영어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인들과 힘겹게 의사소통을 하며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서울의 직장에서 잘 나가던(?) 때를 생각하며 한숨지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 일년이 못되어 나의 영어가 급속히 늘었음을 나는 안다. 매일 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함께 일하다 보니 자연히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렸던 것이다.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잘 모르는 나는 미국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 문제나 사건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토론은 깊이가 없었고 도저히 문제의 핵심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책을 읽어가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토론의 내용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미국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문제 자체를 따져보고 원인을 살펴보았었는데, 언젠가 부터는 비슷한 문제가 한국에도 있는지를 생각하고 비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중국과 일본의 사례들도 함께 제시함으로써 내가 아시안이라는 점을 최대한으로 부각시켰다. 친구들과 교수님들은 강의실의 유일한 외국학생이자 아시안이었던 나의 입에서 나오는 문화 비교를 경청했다. 문제의 근본을 잘 이해 못해 힘들어하던 내가 어느새 수업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삶의 고통스러운 부분이 분명 행복한 무엇인가로 바뀔 가능성을 그 이면에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통을 대하는 ‘나’의 자세이다.
내 주변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문제이기에 그 고통의 해결이나 극복 또한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나는 삶을 통해 배웠다.
나는 자주 다은이에게 2차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코르베 신부의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굶주림과 공포에 떨 때 배급받은 빵을 나누어 먹었고, 탈출한 사람을 대신해서 죽기를 자청했었다. 그의 평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는 자주 말했다.
“내 주변의 고통스런 상황이 내 마음의 평안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밖의 혼란은 밖의 것이고 나의 내부는 늘 평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통이나 고난은 우리 곁에 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순전히 우리들 자신의 몫이다. 동요되지 않고 문제와 싸워 이기든지, 문제에 짓눌려 평정을 잃은 후 미래까지 잃든지, 그것은 정말로 ‘나’에게 달려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