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여사는 지난봄 일흔여덟이 되었다. 화요일 아침이면 골프채를 들고 라운딩을 나가고, 오후에는 손자들 투자계좌에 이달 치 적립금이 자동으로 들어가도록 해뒀다. 금요일에는 딸과 아들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다. 이번달 가족이 어디에 모이든,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거의 들여다 보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40년간 사업체를 꾸리고 가족을 건사하는 삶 속에서 그녀는 지금의 자유를 일궈냈다. 일손을 놓을 무렵, 그녀 앞에 놓인 질문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자산이 충분한가”가 아니라 “이 자산을 어떻게 지키고, 얼마나 오래, 얼마나 의미있게 쓸 것인가”였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불확실한 노후가 두려워 쓸 수 있는 돈도 움켜쥔 채 스스로를 옥죄며 살거나, 반대로 아무런 계획 없이 씀씀이를 키우다 노년에 뒤늦게 곤경을 맞는다. 하필 그 곤경은, 삶의 위기에 가장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나이에 찾아 온다. 백 여사는 두 함정을 모두 비켜갔다. 투자에 밝아서가 아니다. 돈을 쓰는데 분명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획은 세 개의 원으로 이뤄진다.
첫 번째 원은 그녀 자신이다. 골프회원권. 예산 걱정 없이 떠나는 여행. 금요일 밤이면 늘 예약되어 있는 단골 레스토랑 만남의 자리.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원하는 쇼핑을 할 수 있는 삶. 이것은 사치가 아니다. 그녀가 평생 노력으로 만들어 낸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은 주식시장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소득 구조 위에 세워져 있다. 마음의 평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매일 계좌를 들여다 보지 않아도 되는 장기계획과 투자철학에서 오는 안정감이다.
두 번째 원은 손자들이다. 손자들은 이제 청년이 되어가고 있다. 돈을 벌 수도 있고, 돈의 가치를 배울 수도 있는 나이다. 백 여사는 손자들이 투자계좌에 직접 넣는 금액만큼 같은 금액을 적립해 준다. 잔디를 깎든, 학생을 가르치든,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든, 그들이 직접 벌고 투자한 돈은 백 여사의 도움으로 두배로 투자된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받는 것이 아니다. 투자를 통해 돈이 어떻게 스스로 일하고 성장하는지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배움을 시간이 지나며 복리로 성장할 자산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
세 번째 원은 그녀의 공동체이다. 백 여사는 오랫동안 한인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누군가 차마 남에게 말하지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는 사람도 그녀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선행도 드러내지 않는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후원자가 백 여사라는 사실 조차 모른다. 이것이 그녀가 원하는 선행의 방식이다. 한국말로 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덕’(德)이다.
세 개의 원이 굴러가도록 하는 원리는 단순하다. 누군가가 뒤에서 묵묵히 그녀의 재무구조를 지켜보는 것이다. 투자관리는 감정이 투자에 있어서 장기적인 판단을 흐리지 않도록 원칙을 붙들어준다. 시장은 늘 오르내리기 마련이지만, 가장 큰 손실은 대개 잘못된 순간의 감정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그녀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인내와 일관성, 긴 호흡하에 관리된다. 덕분에 그녀의 계획과 세 개의 원은 일시적인 뉴스에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재무제표 위 숫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전문가를 택했다. 그녀의 삶은 가족이었고, 공동체였으며, 살아있는 동안뿐 아니라 그 이후까지 이어져야 할 가치들이었다.
비슷한 자리에 선 많은 이들이 증권계좌 하나와 막연한 기대감만 품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희망은 계획이 아니다. 즐거움. 나눔. 유산.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이다. 평생 의미있는 무언가를 쌓아 왔다면, 이제 물어야할 질문은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그 자산이 앞으로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하기를 원하는가”이다. <이태영 박사 공저>
문의 (410)469-9532(연결번호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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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티 씨씨 CFP·CAIA 웰씨앤와이즈패밀리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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