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도 않은 또 한해의 마지막달이 저물어 간다. 이 마지막달에 또 한사람의 죽음이 매스컴을 타고 태평양 건너 나에게 전해온다. 그 죽음은 바로 아동문학계의 거목이었던 윤석중선생의 타계인 것이다.
그분이 지은 동요 1천200여편 가운데 ‘낮에 나온 반달’, ‘우산 셋이’ ‘산바람, 강바람’ ‘기차길 옆 오막살이’등은 노래말이 되어 우리 어린이들에 의해 즐겨 불리어 지고 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지만 그래도 나이들면 사람은 죽는다는 순리에 따라 윤선생은 92세란 고령으로 기차길 옆 오막살이의 그 기찻길을 따라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길로 가신 것이다. 시대가 고령화 시대라고 하지만 어린이같이 아름다운 정서를 지니고 살았기에 그리도 맑고 고운 어린이 노래 말짓기에 한 평생을 바쳤기에 그의 수명도 92살까지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분이 새싹회를 창립한 해가 1956년. 내가 아동극단 ‘새들’을 창단한 해가 그보다 6년뒤인 1962년. 그리고 그 분과 내가 작가이면서도 아동문학을 했다는 이 두가지 점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머물고 계시면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을 하셨지만 나는 내가 할 일을 중도에 접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와버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 분은 ‘꿈을 찍는 사진관’의 강소천선생이나 ‘나의 살던 고향은’의 노랫말로 유명한 이원수선생과 더불어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의 세 분의 큰 별중의 한 분이신 것이다. 윤석중선생이 생전에 나에게 남겨 주신 두마디 말을 나는 지금껏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말은 내가 1962년 8월 ‘새들’의 창단공연으로 뮤지컬 ‘토끼전’을 명동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렸을 당시 윤선생이 연극을 관람하고 동시에 곡이 붙여져 무대에서 어린이 연기자들이 행동으로 불러주는 맛도 여간 좋은 게 아니네요라고 하신말과 두 번째 그분이 전세계새싹글짓기 작품 공모 독려차 미국에 들러 나를 만났을 때 주평씨는 미국에 오는게 아닌데... 한국에 그대로 머물면서 그 일을 계속했어야 했는데...라는 말이다.
여기서 ‘그 일’이란 아동극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76년 내가 미국에 건너와서 1989년 이 북가주 지역에서 글쓰기와 연극하기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12년간의 공백기간에 윤선생은 한국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계속 발표했고 나는 한참 일할 50대 나이를 허송한 셈이다.
지금 나는 92살로 가신 그분이 특별한 병을 앓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노환으로 가셨다는 보도에 나도 과연 18년후인 그 나이까지 살다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 분이 어린이처럼 정서를 지니고 사신 것 같이 나도 아동극을 통하여 어린이들과 함께 동심으로 살고있다는 점과 육체적으로 나도 특별한 성인병이 없이 그리고 건강의 한 비결인 소식을 하고 있다는 점과 우스개소리이기는 하지만 내 둘째 동생이 입버릇처럼 나에게 던지는 ‘형님이 철들라 카믄 아직 가맏소! 그래서 형님은 오래 오래 살끼요라는 농담이 내가 어린애같이 순수하게 산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진다면 나도 윤선생같이 장수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내가 오래 살아야하는 이유는 이민으로 인한 공백, 그리고 황금같은 50대를 허송한 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그분이 사신 세월만큼이라도 헛되이 하지 말고 어린이에게 꿈을 실어주는 좋은 할아버지로 또 나의 아동극 대본을 집대성하여 후세에 남기는 동극작가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이 해 마지막달에 기차길 옆 오막살이 같이 동화적으로 사시다가 가신 윤선생이 나에게 남긴 그 뼈아픈 말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선생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아동극작가 주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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