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성<특집1부 부국장>
묵은해가 새해로 바뀔 즈음에 한해의 화두로 삼을만한 교훈이 있을까 싶어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데나 펼쳐 보니 마사 스튜어트의 성공담이 실려 있었다. 스튜어트는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여성 경제인이다. 독보적인 사업체들을 세웠고 수많은 베스트 셀러와 인기 잡지를 낸 스튜어트는 월스트릿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함으로써 하나의 신화가 됐던 인물이다.
몇 년전 출간 된 이 책에서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윤리와 정직, 지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조성을 추구합니다. 어렸을 때 나는 한 광고에서 놀라운 문구를 봤습니다. ‘경계(boundary)를 뛰어 넘는 삶’이란 것이지요. 나는 그 말을 항상 기억하면서 내 삶의 모든 경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정직과 성실의 경계를 넘는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 나간 것이겠지요. 레오나 헴슬리를 보세요. 그녀는 모든 것을 소유했지만 정직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결국 감옥에 가고 말았습니다. 성실함을 포기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시작됩니다.”
스튜어트가 언급한 레오나 헴슬리는 ‘탐욕의 화신’까지 불렸던 뉴욕의 호텔 재벌. 엄청난 돈을 가진 헴슬리는 그러나 그 탐욕을 이기지 못해 결국 쇠고랑을 차고 몰락했다. 스튜어트는 그런 헴슬리를 가리키면서 정직과 도덕을 들먹였지만 스튜어트 자신 또한 아주 작은 탐욕의 돌부리에 걸려 정상에서 굴러 떨어졌다. 주식 내부자 거래 혐의로 기소된 스튜어트의 재판은 이번 달 시작될 예정이다.
어렸을 때 목표로 세웠던 ‘경계를 뛰어 넘는 삶’을 이뤄낸 듯 보였지만 결국 그녀 자신도 탐욕과 정직의 경계(warning)로 삼고자 했던 헴슬리와 비슷한 길을 가는 신세가 됐다.
몇 년전 스튜어트가 했던 말과 지금의 그녀 처지를 비교해 보면서 도덕과 양심에 관한 한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다시 한번 돌이키게 된다. “누구는 결코 닮지 않겠다”는 것처럼 결과적으로는 위선적인 다짐도 별로 없는 듯 싶다. 그러기에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는 옛말도 있는 것 아닐까.
새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다짐들을 한다. 인간관계에 관한 다짐도 있고 건강을 위한 결심도 넘친다. 신년 다짐을 도와주는 상품들도 봇물을 이루고 성공적인 한해를 위한 온갖 지침들과 조언도 난무한다. 매달 신년 다짐을 상기시키는 이메일을 보내주는 사이트도 있을 정도이다.
신년다짐은 목표를 분명히 해주고 그 목표를 향해 가는데 채찍질이 되지만 너무 매달리다 보면 구속이 된다. 새해에 의례적으로 세우는 다짐은 별 의미가 없다. 또 지나치게 단호한 결심은 별로 여유로워 보이지 않고 결기마저 느껴진다.
최근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심리상태인 ‘하이포콘드리아’라는 새로운 증후군까지 확산되고 있다는데 그런 강박관념이 우리를 건강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질병이 있다면 친구처럼 노닥거리고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애면글면 조급해 하기보다는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가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올 한해는 소금기 빼내듯 생활 속의 결기를 걷어내기 위해 단 하나의 다짐만 하기로 했다. “아무런 새해 다짐을 하지 않겠다”는.
땅도 몇 년의 수확 후에는 한해를 쉬어야 지력을 회복한다는데 가끔은 우리의 몸과 마음도 그런 휴식을 가질 자격이 있다. “무엇을 하겠다” “무엇은 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독한 결심은 던져 버리고 그냥 몸 가고 마음 시키는 대로 한해를 맡겨 보는 것은 어떨지. 그러다 보니 하지 않겠다던 새해 다짐이 오히려 더 많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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