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다 책을 꽂아 넣다가 책갈피 속에서 편지 봉투 하나가 뚝 떨어졌다. 발신을 보니 경주에 사는 동화작가 박숙희 씨였다.
내가 왜 그녀의 편지를 책갈피 속에 넣어두고 있었을까? 나는 편지를 들고 서재로 갔다. 그리고는 내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게 마치 꿈 많은 소녀가 책갈피 속에 끼워두었던 은행잎을 다시 꺼내 보듯 아니면 연애편지라도 읽어보듯 편지를 꺼내 보니 봉투 속에는 1992년 8월, 9월, 10월 세 번에 걸쳐 보내온 세 통의 편지가 그 한 봉투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편지마다 내가 내 글씨로 첫 번 째 편지, 두 번 째 편지, 세 번 째 편지라고 메모까지 해놓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보내온 편지를 왜 내가 메모까지 적어 간직하고 있었을까?
첫 번째 편지 내용 중 특히 그녀가 나에게 당부한 점은 문명의 이기의 노예같이 길들여져 정서를 잃어가고 있는 청소년을 위해서라도 나를 고국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고, 두 번 째 편지는 꿈을 포기한 사람만큼 매력 없고 불쌍한 사람이 없는데, 내가 보내준 나의 수필집 ‘막은 오르고 막은 내리고’를 읽고 나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분으로 느껴졌다고 적어보냈다. 그리고 세 번째 편지에는 ‘주평아동극선집’을 서점에서 사서 읽고 자기도 아동극을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세 통의 편지 내용이 나를 칭찬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적음은 내가 그렇게 하고자 애써 온 사실 바로 그 점이었다. 특히 그녀가 보내준 동화집 진주가 된 가리비를 읽고 나는 그녀의 주제 선정의 특이함과 문장력의 뛰어남 그 중에도 작품 속의 대화 구사의 재치를 보아, 그에게 아동극작가가 되어보지 않겠느냐? 라고 권유한 나의 편지에 대한 답변이 세 번째 편지에 그렇게 반응했던 것이다.
내가 박숙희 작가와 처음 만난 날은 1992년 8월 8일이었다. 그날 나는 내 친구 석용원 군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아동문학가협회의 여름 세미나에 귀국인사를 겸한 특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 가려고 세미나 장 밖 택시 주차장에 서 있는 나를 그 모임의 회원이었던 그녀가 그녀 차로 나를 숙소까지 데리고 가는 차 속에서 우리는 선후배 작가의 위치가 아닌 마치 오래 사귄 친구같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 나는 그녀의 세 통의 편지를 받고 나의 칼럼 수필산책 란에 ‘경주에서 온 편지’ 라는 제목의 수필까지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세 통의 편지가 오간 것을 끝으로 우리의 왕래가 끝이 났는지 그 이유를 지금껏 모르고 있다. 특히 아동극 작가가 없다시피 한 한국적인 현실에서 그녀의 작가적인 역량으로 보아 촉망받는 아동극작가가 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도 후진작가가 배출되기를 바라던 내가 왜 그녀 같은 월척을 놓쳐 버렸는지? 뿐만 아니라 그녀는 네 편의 동극 작품을 써 놓고 나에게 보이려고 나의 경주방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어 보냈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의 동화책 뒤편에 주소와 함께 적혀있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혹시나 하고 걸어본 모처럼의 전화는 역시 통하지 않았다. 12년만에 건 전화! 경주가 아무리 지방도시이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자리 국번호를 사용할 턱이 없다.
그러나 그 해 가을 세 번의 편지 왕래로 우리의 사귐이 어처구니없이 끝났음이 아쉬워서 편지라도 띄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해를 넘긴 연초에 경주로 편지를 띄워 보냈다.
이 편지 역시 그녀의 손에 들어갈 거라는 기대는 갖고 있지 않다. 그녀가 12년 전의 그 집에 살고 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경주에서 무슨 답장이 오나 하고 오늘도 우체통을 들여다보곤 한다.
주 평/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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