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권력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기자가 생생하게 목격한 적이 있다.
몇 년전 대통령 선거 취재를 위해 대구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본사 취재기자, 사진기자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대구 가는 길에 거기서 멀지 않은 부곡온천을 구경하고 싶었다. 하루 먼저 가서 부곡온천에서 자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동행기자들에게 물었더니 대환영이다. 현지 관광호텔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려 했더니 방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특실인 스위트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스위트라면 3명이 자는 것도 오히려 경제적일 것 같아 예약했다.
그런데 밤 9시에 도착해 보니 난처한 일이 생겼다. 우리가 예약한 방을 경북도경 국장에게 주었다는 것이 지배인의 설명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따졌더니 사실은 대구지검의 유명한 K검사가 예약 없이 들이닥쳤는데 방이 없어 호텔측이 난처해하자 사정을 알게 된 도경국장이 자기 방을 K검사에게 내어주면서 스위트를 하나 더 마련해 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할까. 지배인은 우리가 예약한 방을 내줘 버렸다. ‘경찰서장’ ‘검사’운운하면 우리가 양보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는 고개를 숙이면서 옆집 여관에 방을 잡아 놨으니 옮겨줄 수 없느냐고 사정했다. 나는 “신혼부부가 예약했어도 취소되느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더니 이 친구 왈 “손님에게 따귀를 맞더라도 도경국장에게는 방을 마련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영업을 해 먹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신혼부부를 위해서라면 도경국장이 양보해야 살맛 나는 사회지 신혼부부가 쓸 방을 경찰 간부에게 주는 풍토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사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소리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때 나와 함께 간 기자가 “선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되는 수가 있습니다”하더니 지배인을 불러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몇분간 숙덕숙덕한 후 기자가 달려와 “방이 준비되었으니 올라가시죠” 하면서 자신 있는 표정이다.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물었더니 지배인에게 우리가 기자라는 것을 밝힌 후 도경국장에게 “사실은 그 방이 기자들이 예약한 방입니다”하고 귀띔하면 도경국장이 방을 내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놀란 지배인은 자기에게 비상수단이 있다면서 예약한 것보다 더 좋은 방을 주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문제의 방에 도착해 보니 가구가 으리으리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가족사진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방이 좀 이상하다고 하자 지배인은 “우리 호텔 회장님 방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회장은 일본에 사는 재일 교포라고 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됐다. 회장이 일본에서 갑자기 왔다. 자기 방을 손님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 지배인의 뺨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민망해진 우리 일행은 회장에게 방을 비워 주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근처 아는 호텔에 가서 자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지배인이 괘씸하게 느껴졌으나 나중에는 측은해 보였다.
이 해프닝은 나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에서는 힘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고 힘없으면 뭐가 제대로 풀리지를 않는다. 기업인은 권력의 밥이다. 또 누가 제일 힘있는 지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권력을 놓으면 왜 그렇게 비참하게 되는지, 왜 기업인들이 권력 가진 사람들에게 돈 보따리를 싸들고 쫓아다니는 지도 이해가 간다. 요즘 한국에서 일을 벌인 김에 본격적으로 사회구조를 바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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