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국민회관 복원위원회 홍명기 회장과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김영렬 장로가 독립선언문을 펜으로 쓴 인쇄용 동판과 탁본을 들어보이고 있다.<이승관 기자>
3 1운동 당시 미주 배포 관련 추정
국민회관 복원 중 다락방 유물속 포함
도산 선생 공문서도 포함... 고증 시급
3·1 독립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펜으로 써서 미주에 배포한 것으로 보이는 연대 미상의 독립선언문 필사본 동판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민회관 복원위원회(회장 홍명기)는 25일 지난해 국민회관 복원 공사 중 다락방에서 발견된 2만여 점의 유물 중에서 3·1 독립선언문을 펜으로 쓴 인쇄 동판을 찾아냈다며 이날 동판과 동판 탁본 등 4점의 관련 유물을 공개했다. 이중에는 기미년(1919년)인 단기4252년 3월9일자로 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도산 안창호 선생 명의의 펜으로 쓴 공문서 ‘독립선언의 포고’도 포함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복원위원회는 그러나 필사본 동판의 제작연도와 용도는 알 수가 없다고 밝혀 현재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보관하며 공개하지 않고 있는 2만여 유물 등 방대한 양의 역사적 자료의 고증 및 보존 작업이 시급함을 단적으로 증명해줬다.
다만 동판 끝부분에 작은 글씨로 ‘본문은 널리(?) 등사하기 위하야 국한문으로 옮겨 씀(중앙총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아 중앙총회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1921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총회’는 1910년 북미총회와 하와이총회로 나뉘어 있던 대한인국민회가 하나로 통합해 안창호 선생을 총회장으로 1921년까지 사용해온 이름이다.
김운하 신한민보 발행인은 “당시 중앙 총회장으로 있던 안창호 선생이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으로 듣고는 상해 임시정부로 급히 달려갔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중앙총회라는 명칭이 동판에 사용됐다면 아마도 안창호 선생이 귀국해 선언문 필사본으로 인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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