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경일 행사장 세대교체 바램
3·1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유관순이다. 3·1절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한 유관순 열사는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열사(烈士)보다는 ‘누나’라는 호칭이 더 친숙할지 모른다. 바로 그 3·1절 기념식이 지난 1일 총영사관 후정에서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100여명의 한인사회 각계인사들이 참석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한인 단체장과 노인들로 이들은 한인사회에서 펼쳐지는 각종 행사마다 발품과 시간을 들여 행사장 빈자리를 메워주는 소중한 단골손님(?)들이자 고정 멤버들이다. 이런 분들의 헌신과 열정이 없다면 한인사회 공동체라는 말 자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정말로 고마운 분들이다. 반면에 이날 행사장에는 아쉽게도 85년전 ‘유관순누나’와 같은 젊은 세대 새로운 한인이민 200주년을 책임질 1.5세나 2세들은 한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평일인 월요일 오전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에 한가롭게 국경일 기념식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가진 한인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더욱이 국경일에 대한 역사적 기초지식도 짧을 이민 2세들이 일부러 짬을 내어 참석해 주길 바란다는 마음자체가 욕심일 수 있다. 그렇다. 분명 지나친 기대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행사장을 찾는 원로들이 더 이상 참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과연 누가 그분들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해 하와이 한인사회는 이민 100주년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치루면서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이라는 값진 열매의 맛을 보았다. 처음 맛본 소중한 기억이기에 그 맛을 쉽게 잊을 수는 없지만 기억도 미각도 영원불변일 수는 없는 법이다. 영영 그 맛조차 회복할 수 없는 미맹(味盲)이 되기전 서둘러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민족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 하와이 한인사회가 직면한 고민이자 과제이다.
그러나 답은 의외로 쉽고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단순할지 몰라도 바로 가장 쉬운 해법 중 하나가 한인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인 행사장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민족정서에 바탕을 둔 만남의 장이다. 특히 3·1절과 같은 국경일 행사는 해외에 사는 이유로 잊기 쉬운 민족의 정통성과 조국애를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산 역사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나 그 나라 고유의 국경일을 제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한국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해 이를 4대 국경일이라 부른다. 하지만 국경일 기념행사가 단순한 요식행위로 흐른다면 이 또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경일은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다. 국경일의 의의를 기리고 그 뜻을 계승하자는게 본래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한인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자발적이면 더 좋고 타의에 의해서라도 우선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을 향해 갈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우리는 미국에 산다는 핑계로 한국과 미국 모두를 이해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바쁜 이민생활을 방패삼아 양쪽 모두 외면하며 살고 있는 국적미아는 아니었을까. 유관순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3·1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젊은 세대 한사람 없는 국경일 기념식장은 더욱 참담하고 을씨년스럽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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