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한국전통무용과 문화의 뿌리를 더듬는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전해주는 이름이 있다.
아직도 하와이 한인사회와 함께 숨쉬고 있는듯한 ‘고 한라 배 함여사(1994년 1월29일 타계)’가 그 주인공이다. 고인이 한인사회 나아가 하와이 무용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난지도 올해로 어언 10년.
그 후학들은 지난 10여년간 고인이 남기고 간 유지를 받들기 위해 한라함재단을 설립하고 또 한라함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한국고전무용의 뿌리를 이 땅에 더욱 깊게 내려가고 있다.
또한 오는 27일에는 그 후학들이 마미야극장에서 고인의 10주기를 추모하는 뜻깊은 무용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1922년 부산에서 태어났던 고한라 배함여사는 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사촌언니 배구자씨로부터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17세에 한국으로 돌아가 당시 함성준씨와 인간문화재 김성준씨에게 사사받았다.
1949년 하와이로 이주, 1950년 한라함스튜디오를 개설하고 하와이에 독자적인 자신의 춤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 이후 한라 배함여사의 인생은 자신의 춤세계 구축과 하와이에 한국전통무용의 전승과 보전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속에서 한국고전무용을 이땅에 뿌리내리고 전파하기 위해 식당종업원, 관광가이드직을 마다하지 안았고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한국의 춤사위를 선보였다.
이민100주년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기까지에는 1953년 이민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한라함선생이 보인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주도했던 김창원회장은 당시 한국무용의 불모지 하와이에서 한국전통 춤사위를 선보이기 위해 함여사는 양철 버킷에 가죽을 씌워 급조한 장고를 메고 신명나는 우리 춤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며 당시 한인들은 부족하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고물차에 무용도구를 가득싣고 이곳저곳으로 공연하러 다니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체험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한라함여사는 한국무용의 체계적인 발전과 전승을 위해 스튜디오 운영외에도 하와이대학에서 20여년간 강의를 했고 청주대학에서 5년간 후학들을 가르쳤다.
또한 1980년에는 ‘굿’을 소재로한 영문판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었다.
40여년간 하와이에서 오로지 한국무용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 가녀린 자신의 온 몸을 외롭게 불사르고 이승을 하직한 한라함여사의 혼불은 다행히 이곳 하와이에 꺼지지 않은 불씨로 지펴져 이민100주년의 화려한 문화공연의 불꽃을 이루었다.
고인이 떠난지 어언 10년...
오늘날 하와이 한국전통무용계는 고인의 양철 버킷에 가죽을 씌운 장고춤을 상상할 수없을만큼 화려한 소품과 무대의상을 갖춘 전통무용연구소와 무용인들이 각각 활발한 공연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함과 다양함속에서도 웬지 속이 빈듯한 허전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새 이민100년 원년에 개최되는 고인의 10주기 추모 공연을 계기로 54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라함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하와이 한국 전통무용계가 단단하게 뭉쳐 하와이 한인 후세들에게나아가 하와이 주류사회속에서 한국 전통 춤사위의 뿌리를 더욱 더 깊게 뿌리내리는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신수경
편집국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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