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 3월, 그 3월이 아쉬운 작별인사를 서두르고 있다.
올 3월의 하와이는 비바람으로 시작해서 비바람으로 끝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궂은 날씨의 연속이다. 유난히 잦은 비와 바람으로 지상의 낙원이라는 하와이의 명성에 누(累)를 끼쳐서 일까, 3월이 4월을 재촉해 부르고 있다.
태평양 저 멀리 내가 두고 온 조국의 3월을 기억해 본다. 겨우내 얼었던 시냇물이 졸졸졸 생명의 소리를 싹 틔우고 두리뭉실한 마을 뒷동산은 붉은 보랏빛 진달래로 물들여 지고 길 따라 노란 개나리 활짝 피어난 생명력 넘치는 계절이었다.
이런 연유로 계절의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이곳 하와이에서 내가 간직하고 있는 3월의 추억은 그리움을 넘어선 믿음이었다.
그러나 올 3월은 여느 해와 달랐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이 연상될 정도로 우리를 슬프게 한 달이었다. 울음 우는 아이의 모습이 슬프다는 안톤 슈낙의 서정성 풍부한 산문과는 거리가 멀지만 3월에 느낀 작은 슬픔을 두서없이 고백해 본다.
새로 발견된 빛바랜 유관순 누나의 사진을 보며 친일세력을 응징하지 못한 조국의 현실이 슬프고, 폭설로 무너져 버린 비닐 하우스 곁에서 담배 한 모금으로 마음 달래는 주름진 농부의 무심한 표정이 슬프고, 갖은 생쇼를 펼치는 국회의원들의 위풍 당당하고 권위 넘치는 얼굴에서 번지르하게 흐르는 기름기가 슬프고, 저 먼 사막에서 가족을 그리다 영문도 모른 채 외롭게 피 흘리며 쓰러지는 젊음이 슬프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죽일듯이 증오하는 분노에 찬 눈빛이 슬프다.
천막치고 길게 늘어선 아파트 분양 신청자들의 희망 찬 줄서기에 집 한칸 장만할 수 없는 무능함이 슬프고, 멈출 줄 모르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개솔린을 고물 자동차에 주유해야만 하는 손길이 슬프고, 반팔 윗도리에 반바지만 입고 관광왔다 흠뻑 젖은 채 비바람에 떨고 있는 군상들이 슬프고,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공사장 외벽의 군데군데 뻥 뚤린 구멍이 슬프다.
짧디 짧은 목의 힘줄 터지는 줄 모르고 ‘친노 반노’를 외치는 자들에게 학대받는 목젖이 슬프고, 소주값 제일 싼 식당에서 싸구려 안주로 얼큰해진 뒤 힘들게 벌어지는 지갑속 허전함이 슬프고, 투잡 쓰리잡 뛰며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갸날픈 아내의 피곤에 지쳐 잠들은 얼굴이 슬프다.
한편의 정열적인 영화에 쏟아지는 온갖 잡스러운 협잡과 위협에 놀아나는 영화판의 예술혼이 슬프고, 하나둘 늘어나고 높아지는 교회의 첨탑속에 점점 더 메말라가는 삶의 각박함이 슬프고, 갑작스런 죽음 선고에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인생역정이 슬프고,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면서 오늘도 변함없이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굴레가 슬프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 못하는 비겁함이 슬프고, 슬프면 참지말고 눈물 흘려야 하는데 울음 삼키고 펜대 굴려 지면을 채워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슬프다.... 정말 슬프다.
이제 4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잔인한 달’이라는 4월이 말이다.
그러나 4월은 3월보다 더 높은 창공과 더 푸르른 대지속에서 향기 가득 품은 첫사랑의 꽃 라일락을 키워내는 계절이다.
3월의 슬픈 넋두리는 넘겨버릴 달력과 함께 먼 과거속으로 떠나 보내고 잔인한 달 4월을 웃음 가득한 행복의 달로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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