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빈 무덤이 외치는 소리는 어느 것보다 큽니다. 침묵의 소리는 웅변보다 낫습니다. 빈 무덤의 침묵의 소리는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는 선포입니다. 육신이 다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다는 선포입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예수님의 형제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못 믿었습니다. 우리들의 고정 관념은 이렇게 두꺼운 벽입니다. 유대인들이 많은 기적을 체험하였다고 하나님 믿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못 믿었습니다. 타락한 영성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부활을 영적 체험 정도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부활의 영성화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부활은 죽은 몸이 다시 사는 선포요,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음을 알려주는 가장 큰 침묵의 소리입니다. 제자들도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야 눈과 귀가 열리고 삶이 바뀌
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을 믿고 난 제자들은 변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꿉니다. 짧은 인생이 다 인줄을 알기에 괴로우면 자살하고, 돈 좀 있으면 쾌락에 빠져 한순간을 불나방처럼 살던 인생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에서의 인생관은 ‘지금 여기서’였습니다. 찰나적이고 쾌락적이었습니다. 당장 배가 부르면 장자 권이고 영원한 것이고 다 필요 없었습니다. 한순간의 쾌락과 만족을 위한 결정은 자손만대로 그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때 얻은 귀한 아들을 하나님이 달라고 하니 드렸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니 내가 죽여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고 부활의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원을 믿는 사람은 자유 함이 있습니다. 드릴 수 있습니다. 손해볼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쉬면서 갈 수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인생관, 세계관과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꿉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신성 선포입니다. 죄가 있었다면 결코 다시 살 수 없었을 터인데 이로 인해 죄 없으심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도 부활과 더불어 완성되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빈 무덤은 선교의 선포입니다. 비어있는 과거의 역사 속에 머물지 말라고 하십니다. 부활을 믿고, 알고, 체험하고, 확신한 사람들이 선교합니다. 나만 이 기쁨을 갖지 말고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일어납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남기신 이 시대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삽시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목사(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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