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서 귀환 사전트 김경재씨의 참전담
전선 없는 전장서 정찰… 테러리스트 생포도
이라크 전장에는 많은 한인 병사들이 있다. 9·11테러 참사 후 직장을 사직하고 자원 입대한 김경재(30)씨의 참전담을 소개한다. 제82공수사단 장거리 정찰대 소속인 사전트 김은 수개월 동안 작전에 투입됐다가 지난달 귀환했다.
우리 팀이 매복하고 있던 지점 주변에 또다시 트럭이 지나갔다. 지난 수 일동안 감시하던 테러리스트 캠프 주변을 순찰하는 경비병들이 탄 트럭이었다. 매복지점 전방 2,000여 미터 앞을 지나던 트럭이 갑자기 멈춰 섰다. 뒤에 타고 있던 서 너명의 이라크인들이 우리 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트럭이 방향을 바꿨다. 바람 소리 밖에 들리지 않던 황야, 화성 표면 같은 이곳에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상황을 관찰하던 팀장이 이동준비를 명령했다. 나는 무전기로 화력 지원을 요청했다.
나는 공수부대 장거리 정찰대의 팀원이다. 우리의 임무는 고공낙하, 스쿠버 장비를 이용한 수상 침투 또는 육로로 적진 70마일 후방 지역에 투입돼 15일 정도 보급 없이 단독 작전을 수행한다. 전선이 없는 이번 전쟁은 사방이 적진 후방 70마일이다. 6인1조인 우리 팀은 정보 수집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무장정도가 빈약하다. 개인화기가 고작이다. 전투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황 발생 때는 15분내 아파치 헬기, 공해군 전투기, C-130 건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총알이 ‘윙’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테러리스트들이 더 많아졌다. 동료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생전 처음 동양인을 만났다며 나를 신기하게 대하던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파란 눈의 그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나를 죽이려고 총을 쏘는 사람을 향해 나도 같이 총을 쏜 것은 이라크에 도착한 뒤 이번이 3번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까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는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혹독했던 레인저 훈련에서 배운 대로 동물 같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다행히 우리 팀에서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교대해주었던 이전 팀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지난번 작전 때는 테러리스트 2명을 사로잡기도 했었다. 얼굴을 가리는 후드를 덮어 쓴 그들은 정보부대에 인계될 때 벌벌 떨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잠시 후 헬기 소리가 들렸다. 지상에 닿을 듯 낮게 비행하는 아파치 헬기가 굉음을 내며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폭음소리와 함께 불기둥이 보였다. 동시에 블랙호크 1대가 날아와 착륙했다. 엄호사격을 하면서 한 명씩 헬기에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안도감보다는, 120파운드가 되는 장비를 메고 며칠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좋았다. 기지에 도착하면 수통에 든 물부터 버려야겠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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