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남북 격전지 피터스버그는 남군의 수도 리치몬드로부터 40여 마일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포마터스 강이 시 한복판을 지나고 있고 격전지 옆으로 95번 국도가 지나간다. 격전지 뒷문에는 옛 남부군이나 시민들의 묘들이 격전지의 아픔을 말해주듯 총총히 문을 가로막는다. 봄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따뜻하게 들판에 쏟아져 내리고 들꽃이 만발한 등성이는 청동구리의 낡은 포대를 여기저기 감추고 있다.
5개의 진지마다 어두운 창호가 끝을 뾰족이 다듬은 길고 긴 나무장벽의 장애물 아래로 요리조리 돌아가서 험악했던 전선을 이루고 있다. 숲이 멀찌감치 있는 이 벌판은 실로 참혹한 실상이 일어났던 곳이라면 땅 깊지 않은 곳에 그들의 피가 스며있고 그들의 유골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울부짖을 것만 같다.
마지막 최후 전선인 5진지는 유력한 흑인 보병대의 매복지였는데, 보이는 정면으로 주요 철도가 가로질러 가고 로버트 리 장군의 정예 수도 경비대가 마지막 전선을 지키고 해를 넘길 때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는 5진지 사령관에게 공격 명령을, 그는 참모들의 만류로 지형을 숙지한 흑인 보병을 뒤로 밀고 백인 보병을 투입하여 전멸하는 참패를 당하고 2백 명의 후속 흑인 보병대도 몰살당하는 격전지로 유명하다. 피터스버그의 전선에서만 북군은 4만 명, 남군은 2만 명의 전사자를 내는 끔찍한 전투였으니.
생각해보니 동작동 국군 묘지에도 무궁화와 개나리가 만발하였겠고 현충일이 오면 어린아이들이 태극기를 꽂아 놓는다. 틈틈이 흰옷을 입은 가족들이 목놓아 울부짖음이 애처롭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점령지에서 곤욕스런 낭패를 당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를 자처한 전쟁이었는데 적지 않은 쌍방의 피해는 그칠 날이 없고 일부 병력의 부적절한 포로학대는 이라크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규탄을 받고 지역평화가 더욱 요원해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 부시대통령의 지도력은 돋보이지만 그의 외교력은 석연치가 않다. 그는 전장의 용장도 필요하지만 세계의 민심을 어루만질 유능한 정치가가 절대 필요하다. 어쩌면 그는 용장도 정치가도 거느리지 못한 것일까. 대통령 스스로가 그 정치가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리치몬드에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전선에 나가 전사한 한 청년을 고등학교가 정중히 장례예식을 치러줌으로써 그의 가족과 리치몬드 시민과 국가가 그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와 애도를 표함으로써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고통을 나누는 우리 모두의 일로 새기게 되었다. 우리의 장병들이 다시는 월남전쟁의 상처를 갖고 돌아와서는 안되겠다.
평화는 전쟁의 승리로 이룩되기보다는 전쟁의 위협을 통해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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