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54주년을 맞았습니다. 제 처의 고향이 북이기에 어른들을 만나면 전쟁 중에 사선을 넘어 피난 온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어른 한 분이 이북에서 부유하게 살았답니다.
워낙 예수님을 잘 믿으시는 분이어서 집안 머슴들에게 한번도 찬밥을 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식구들이 먹는 대로 차려서 머슴들을 대접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분은 공산당 치하에서 숙청 대상이었기에 밤길을 틈타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38선 근처에서 체포되었답니다.
처형장에 자신을 끌고 가던 공산당원이 산기슭에서 갑자기 큰절을 하더랍니다. 그는 데리고 있던 머슴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공산당이 되어 옛 주인에게 마지막 보은을 하겠다면서 남쪽으로 가는 길로 인도했답니다. 그 어른은 그 때 일을 만날 때마다 실감나게 말씀하셨습니다. 머슴 취급하지 않고 사람 대접한 것이 마음에 사무쳐 그 어른을 살려준 실화입니다.
함흥 대 철수 작전이 있었던 날, 미국 사령관에게 부둣가에 모여든 피난민을 살려달라고 젊은 의사가 있었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그 시대에 의학 공부한 현봉학 선생님입니다. 이 사실을 TV를 통해 알고 나서 아내와 저는 크게 감격했습니다. 군인들과 전쟁무기만을 싣고 철수하여야 할 함정에 10만 명에 가까운 피난민을 싣고 거제도까지 철수시킨 역사는 한 젊
은 의사의 민족사랑 마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던 알렉산더 헤이그 장군이 당시 사령관의 부관으로서 피난민의 구조를 요청하던 그 ‘젊은 의사’를 기억하고 증언하였습니다. 쉰들러는 나치의 가스 실로 향하던 1천명이 넘는 유대인을 자신의 돈으로 권력을 움직여 구원하였습니다. 생존자 자손들이 6천여명으로 번성해 지금도 쉰들러를 추모한다고 합니다.
사지에 갇혀있던 10만명이 넘는 민족을 현봉학 선생님이 미군 사령관을 감동시켜 구원하였다니 한국의 쉰들러라고 불릴 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 시대에 현봉학 선생님은 앞으로 영영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필라델피아는 운동 경기에도 이기는 적이 없고, 경주말 스마티 존스마저 기대를 저버려 미국 사람들 마저 필라델피아에서 뭐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고 자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라에서도 서재필 박사나 현봉학 선생님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2세, 3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수십만 명을 살리는 일을 또 감당해 우리의 이민사를 빛나게 할 것입니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목사(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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