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다. 우연히 TV에서 본 마당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해마다 마당극 공연장을 찾은 적이 있다.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 하나하나는 물론 작은 숨소리마저도 속속들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무대의 분위기에 따라 파도처럼 일렁이는 객석의 뜨거운 열기 또한 공연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같은 공연이라도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민생활을 하다보면 자연히 고국의 문화와 정서에 깊은 애착과 갈증을 느끼게 된다.
그런 탓에 한국에서 공연단이 오면 참석 여부를 떠나 그냥 반갑다.
지난 6일 열린 서울예고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그랬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음악 애호가가 아닌 이상 일부러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누가 클래식 공연장을 찾을까 싶었다.
기자 또한 고백하건데 그런 부류 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추측을 해보니 공연 자체가 염려되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공연전 만난 오케스트라의 한 관계자는 NBC홀에 음향판이 설치되지 않아 야외에서 연주하는 것과 같다며 사전 준비의 미흡함을 질책했다.
게다가 한미동맹 51주년 기념 연주회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 로컬주민들까지 초청했는데 연주홀은 꽉 채워지지 않았다.
드디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미국 국가와 애국가가 먼저 연주되었다.
연주회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한미동맹 51주년을 기리는 의미의 사려 깊은 연주였다.
이어 경쾌한 풍의 윌리암 텔 서곡과 귀에 너무나도 익어 저절로 어깨 춤이 쳐지는 한국민요들, 그리고 로맨틱하면서도 웅장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연주되었다.
앳띤 얼굴의 한국 꿈나무들이 남국의 한 여름밤을 아름다운 선율로 수 놓는 순간이었다.
과연 카네기홀의 초청을 받을 만한 발군의 실력이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연주홀을 진동시켰다.
기립박수와 수차례의 앵콜연주 후에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함께 불렀다.
공연전 불길한 예감은 어느덧 사라지고 오늘 공연장에 참석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진한 감동이 몰려왔다.
공연이 끝난 후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실로 애틋한 한미동맹 51주년 연주회 풍경이었다.
특히 이날 동포들이 보여준 기대이상의 수준 높은 공연관람 태도는 연주회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시도때도 없이 요란하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도,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수군거리는 소리도 거의 없었다.
간혹 터져 나오는 기침소리가 오히려 무안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국에 뿌리를 내린 우리에게 한미동맹은 한낱 구호가 아니란 걸 말이다.
그래서 이번 행사의 성공이 더욱 뜻 깊은 것이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어린 학생들의 수고와 한인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로 한미동맹 기념 연주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던 바로 그 시간, 태평양 건너편 한국에서는 한미동맹이 불편한 관계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미동맹 균열시 초래될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뉴스가 신문의 한 면을 크게 장식하며 회자되고 있었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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