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물에 빠졌어도 건져주지 않겠습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그 때 그 시간에 거기 있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 혼자만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기관장, 항해사, 모든 선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협조했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왔는데 이렇게 영웅시 하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너무 제 생각과 다르게 되어 어리둥절합니다.”
이것이 내가 만난 전제용 선장의 첫마디였다. 얼굴에는 나이보다 더 많은 주름이 있고 바다의 거친 바람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구리 빛 얼굴에 주름진 미소는 만나는 이의 마음을 오히려 푸근하게 하는 따뜻함이 배어있었다. 고향에 두고 온 우리 시골 아저씨를 만난 것 같이 반가 웠다.
전 선장은 그 동안 96명의 난민들과 찍은 사진을 무슨 가보나 되는 것 같이 보관하고 있으면서 이따금씩 들여다보며 가족을 다 버리고 혼자 도망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피터 누엔을 생각했다. 그는 그 당시 96명의 난민 중에서 대표 역할을 했었다. 그가 어떻게 되었을까. 가족은 만났을까.
그때 그와 했던 농담을 떠올리기도 했다. “내가 너를 살려는 주었다만 그것이 너를 이산가족 만든 결과가 된 것 아니냐. 너 이 다음에 너의 부인은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새 장가들 것 아니냐”고 했던 생각이 나곤 했다. 그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무엇을 하든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데리고 올 거야”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었다.
2002년에 그가 병원에서 같이 간호사로 일하던 김순자씨를 통해 다시 연락이 되었을 때 처음 물어본 질문이 “피터가 가족들을 대리고 왔느냐”였고 그가 미국으로 온지 7년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없이 기뻤다고 했다.
또 부모 없이 12살, 15살짜리 남매가 배에 올라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 갑판에서 둘이 손을 잡고 먼 석양을 바라보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며 내게도 저런 아이가 있는데 저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니 참 마음이 우울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8월 8일 1,000여명에 가까운 월남인과 한인이 전 선장을 환영하기 위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이 많은 분들이 서성거리며 그를 보겠다고 목을 길게 빼고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로 계면쩍고 부끄러운 얼굴로 전 선장이 들어섬과 동시에 “우리의 영웅 전 선장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치는 소리와 박수소리가 온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한 사람의 선행이 미국 땅에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살려주었고 베트남 커뮤니티와 화합하여 서로 손잡고 형제처럼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고 껴안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여기 모인 많은 월남인들은 그들 자신이 난민들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게 된 그 일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기에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거다.
피터는 19년이 되도록 생명을 건져준 은인을 잊지 않고 보온의 기회를 가졌고 한사람의 사건을 커뮤니티 차원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이제 전 선장의 사랑의 실천을 본받아 바짝 가까이 붙어 있는 베트남 커뮤니티와 손에 손을 잡고 새로운 앞날을 함께 개척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것이 전 선장이 뿌린 사랑의 씨앗의 결실이다.
정선희/가든그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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