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롱아일랜드의 아름다운교회에서 열린 한인입양아 가정 초청잔치에서 입양기관인‘뉴 비기닝스’의 디렉터 캐티 다나우스키(59)씨는 한인 입양아의 뿌리교육을 유난히 강조했다.
“한인 입양아는 한민족의 피를 나눠 가진 형제자매이며 미주한인사회의 일부”라고 말한 그는 입양 가정과 한인사회의 교류를 강화함으로써 입양아들이 한국의 문화전통을 이어받아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난 13년간 뉴 비기닝스의 디렉터로 2,000여명의 한국 입양아를 미국가정에 입양시켰고 그 자신이 3명의 한국 입양아를 훌륭히 길러낸 한국입양아의 대모이다. 그는 한국입양아를 입양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입양 후에도 입양가정의 문제에 대해 상담해 주고 입양가정을 위한 사교행사와 문화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롱아일랜드의 미네올라에 있는 그의 사무실
에는 하루종일 입양가정의 상담전화가 쏟아져 들어와 그의 일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다나우스키씨가 한국입양아 사업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이 아니다. 뉴욕에서 태어나 세인트 존스대학과 호프스트라대학에서 심리장애 특수교육을 공부한 그는 밸리스트림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10년간 가르친 교사 출신이다. 그는 1973년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자마자 가정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 가정을 주기로 남편과 합의, 1975년 한국에서 3살짜리 남아 크리스토퍼를 입양했다.
크리스토퍼를 입양한 지 7개월만에 다나우스키씨는 친딸 애미를 낳았다.
얼마 후 입양기관에서 다나우스키씨에게 한국 남아 한 명을 더 입양하라고 제의해 왔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이가 좀 많았다. 다나우스키씨는 첫째 아들의 위치를 지켜주고 싶어서 그보다 나이가 적은 남아를 입양하기로 결정, 1979년 5살짜리 아담을 한국에서 입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친딸 애미는 남자가 2명이기 때문에 여자도 2명이어야 공평하다고 여아를 입양하자고 떼썼다. 입양에 돈이 많이 든다고 애미를 달랬더니 애미는 입양에 보태라고 17달러34센트가 든 저금통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막내딸 베키는 1981년 한국에서 입양되었다.
다나우스키씨의 한국입양아 3명과 친딸은 모두 훌륭한 성인으로 자랐다. 큰 아들 크리스토퍼는 보스턴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 아담은 롱아일랜드에서 플릿뱅크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큰 딸 애미는 사진작가이며 막내딸 베키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다나우스키씨는 34년간 교사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은퇴한 남편과 두 딸과 함께 웨스트 아이슬립에 살고 있다.이 가정은 다나우스키씨가 아이리스계, 남편은 폴란드계, 딸은 친딸과 한국입양아로 구성된 국제가정으로 한국의 김치, 불고기, 김밥, 떡국, 만두가 식탁에 오르는 한국가정이기도 하다.
입양아를 기르던 다나우스키씨는 1979년 롱아일랜드 멜빌에서 열린 한 입양아 부모 모임에서 한국인 박씨 부부를 만났다. 박씨 부부는 소셜워커 교육을 받고 정신보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입양아를 입양한 미국가정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 후 1985년 박씨 부부는 입양기관인 뉴 비기닝스를 시작했고 다나우스키씨에게 도움을 청해 그는 뉴 비기닝스에서 입양 알선, 상담 등의 일을 도왔다. 1991년 박씨 부부가 선교사가 되어 베트남으로 떠나자 다나우스키씨가 뉴 비기닝스를 맡아 디렉터의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뉴 비기닝스는 그간 2,000명 이상의 한국입양아를 미국가정에 입양시켰는데 최근에는 한국입양아가 줄어들고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에서 입양아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연간 100명 정도의 한국입양야를 주선하고 있다.
다나우스키씨에 따르면 미국 전체에 입양되는 한국입양아는 1990년까지만 해도 연간 5,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0명 정도이며 중국, 러시아 등은 각각 3,000명을 넘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입양 시스템이 가장 잘 되어있어 다른 나라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했다.
다나우스키씨는 뉴 비기닝스를 통해 입양을 알선할 뿐만 아니라 한국입양아를 위한 애프서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매년 7월 1주간 개최하는 문화감사 캠프이다. 지난 1979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는 입양아는 물론 부모들이 반드시 참석하여 한국의 춤과 음악,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한국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등 한국적 생활을 익힌다.
그는 또 지난 20년간 매년 한국입양 가족 피크닉을 개최하고 10대들을 위한 볼링파티, 피자파티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이런 행사를 통해 그는 한국입양가정이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입양아들에게 자기네와 같은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기회를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입양 가정이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입양아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라고 한다. 입양아들은 “내가 왜 입양되었나” “내가 왜 버려졌나” 하는 물음에 답을 찾는데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되고 특히 학교에 들어갈 때 다른 학생들과 얼굴이 다른데 대해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이럴 때 입양아 부모들이 상담을 청해오는 경우가 제일 많
다는 것이다. 다나우스키씨는 입양아들에게 뿌리에 대한 교육을 잘 해서 자신감을 갖게 하
고 사랑으로 세심하게 보살펴 주면 입양아들을 바르게 자라게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미국가정에서 한국입양아를 입양한다고 하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입양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기 때문에 웬만한 가정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이다.
우선 입양가정의 부모는 45세 이하로 결혼한지 3년 이상이 되어야 하고, 심각한 질병이 없이 건강하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입양부모는 범죄경력, 특히 아동학대범죄 경력이 없어야 하고 안전하고 사랑스런 가정환경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자격조건을 가진 가정이 입양기관에 신청서와 함께 모든 증빙서류를 내면 입양기관은 부모들에게 한국문화와 어린이 교육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가정을 방문하여 사실확인을 한다는 것이다.
입양기관은 이 과정에서 종합된 결론을 보고서로 작성, 한국기관에 보내고 한국기관은 미국 입양기관에 가능한 입양아 후보자를 골라 보내는데 입양부모는 입양아의 사진과 의료정보만 가지고 입양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하여 이민국 수속이 끝나 입양아가 케네디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양아와 양부모가 처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이렇게 미국가정에 입양된 한국입양아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미국사회의 각계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다나우스키씨는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입양아들은 미국과 한국의 헤리티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이런 입양아들과 양부모들이 한인사회와 교류하게 되면 모두를 위해 좋지 않겠느냐며 이번 교회행사가 그런 열매를 맺기를 바랬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입양사업이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이고 특혜라고 감사했다. “가정이 없는 아이에게 가정을 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고 말하는 다나우스키씨는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는 날까지 입양사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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