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중 부부가 중풍으로 고생하는 동서내외를 방문했다. 처형은 반색하며 눈물을 흘렸고 동서는 미륵처럼 무표정했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더니 그의 장력이 아프도록 뜨거운 감정을 전달한다.
처형은 동생의 손을 잡고 “너를 다시 못 볼 듯했는데 살았으니 또 보는구나. 이 양반이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 게다”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남편을 쳐다본다. 동서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그런 언니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가는 젖어 있고 나의 가슴속도 뜨거워졌다. 우리가 아는 그들의 삶의 역정이 한편의 소설 같은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처형은 대농가 일곱 딸 중 넷째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언니들의 뒤를 이어 집안살림을 맡아 하다가 스물두 살 때 동갑인 대학생 신랑을 만났다. 부모의 뜻에 따라 선을 보고 부부의 인연을 맺고 나서 처형은 신혼 초부터 과묵한 남편의 속을 헤아리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가슴속에는 학력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어 젊은 남편이 그것 건드릴까봐 조심했다. 남편은 월급봉투에서 자신의 용돈을 뺀 나머지는 아내에게 넘겼고 그녀는 빠듯한 가계를 꾸려갔다. 계를 하다가 잘못되어 집을 날렸지만 남편이 한마디 나무람 없이 오히려 아내를 다독여주어 그런 그의 가슴속이 너무 깊고 넓어 거북했다.
동서는 고등학교 생물과 윤리 선생이었는데 그는 인간관계에서 도덕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부모와 자식간은 물론 부부간의 도덕성에도 엄격했다. 그는 세월이 시대를 따라 변화하고 인생이 세월을 따라 살아가도 삶의 원칙을 지켰다.
그러나 동서는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굴레를 벗고 세월을 살아본다. 부부가 국내외를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사먹고 아내와 마주앉아 소주잔을 나누며 흘러간 노래에 그리움과 회한을 담아본다.
불행히도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중풍에 걸렸고 치료를 받다보니 아내 쪽의 회복이 빨랐다. 그런 어느 날 처형은 방문 앞 계단을 내려오다 그만 실족하여 뒤로 넘어지고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수술을 하고 의식을 회복하기까지 남편은 불편한 몸에도 매일 버스를 타고 병원을 출퇴근하며 아내의 병상을 지켰다.
다른 남매들이 문병을 오면 잔정이라고는 없던 반백의 사내가 노처의 손을 잡고 울고 있어 그 몰골이 하도 측은해 통곡을 하고 싶어지더란다. 처형도 의식을 돌린 뒤 그런 남편을 보고는 문득 모성애가 발 동하여 자기 없이는 살지 못할 듯한 그가 한없이 가엾어지더라고 했다.
그들 부부는 서로를 불쌍히 생각하고 서로에게 무한한 자비를 베풀고 있다. 남남으로 만나 지난 50년 세월을 함께 한 애증과 고락과 애환을 운명적인 만남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남진식/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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