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영화 수퍼맨 역을 맡았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유명을 달리하였다. 잘 생긴 미남에 건장한 체격을 가졌던 그가 말을 타다 낙마하여 목뼈가 부러지면서 척추를 다쳐 전신을 쓰지 못하였던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재활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온 처절한 운명과 맞서 싸워왔기에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수많은 장애우들에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반면 장애우를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요즈음은 조금 달라졌다고 하나 예전에는 가족 중에 장애우가 있으면 되도록 숨기려 하고 손님이 집을 방문하면 방안에서 나오지조차 못하게 하는 등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할 가족으로부터도 차별대우를 받아 장애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가족 중에 장애우가 한 사람 있다는 것은 비단 부모에게 국한된 멍에가 아니고 온 가족이 다같이 나누어 짊어지고 가야 할 커다란 짐이다. 살아가면서 가족 모두가 겪는 마음 고생들은 이루 필설로 표현하기 어렵다.
오래 전에 어느 일본인 장애우 어머니가 쓴 자전적 책의 제목이 ‘무정한 바람아 이 등불을 끄지 말아다오’였는데 책제목에서부터 그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 흔치 않았었다. 요즈음은 후천적으로 차량사고 등의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경우도 많이 본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과도한 케미컬을 사용하게 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이런 불행한 일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아흔 몇살의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는 역시 아흔살이 넘은 부인을 수발하다 지쳐 부인과 동반하여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은 입만 열면 ‘민생’ 운운하는 한국 정치인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사건이었다.
내 가게가 있는 오래된 빌딩 출입구는 3개의 계단이 있다. 이 빌딩에 거주하는 9세의 애슐리라는 히스패닉 소녀는 휠체어를 타고 매일 학교에 간다. 아침마다 휠체어를 실어 올릴 수 있게 장치된 학교버스가 오는데 아이 엄마는 몸무게가 70파운드쯤 나가는 애슐리를 휠체어에 태우고 세 개뿐인 층계를 끌어올리는 데도 힘이 부친다. 나는 언제나 밑에서 같이 들어 올려주는 도우미 노릇을 한다.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딱딱한 음식조차 삼키지 못하는 애슐리는 그 부모들에게 평생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의 멍에이다. 아이 아버지와 이산가족이 되어 엄마와 딸 두 식구가 이곳에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재활을 위한 미국 병원 통원치료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노인들과 장애우들의 복지를 위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한 위상에 걸맞게 예산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한인사회도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더 깊은 애정으로 감싸안는 성숙함을 보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윤효중/시카고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