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가 라디에이터USA 창고에 세워 둔 1984년형 콜벳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씨는 차별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며 소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멀리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효섭 기자>
장애인의 달, 기획 시리즈 2
김경민 ‘라디에이터USA’대표
“내가 최고” 되뇌이며
엔지니어 거쳐 창업까지
장애인 안식처 설립 소망
자동차용 방열기를 취급하는 라디에이터 전문 수입업체 ‘라디에이터USA’.
라디에이터 하나만 판매해 매년 수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이 회사 대표는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김경민씨다. 목발에 의지해 이동하는 모습을 보기 전에는 환한 미소와 환한 이마를 가진 그를 장애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 명륜동의 유복한 집안에서 10남매 중 9째로 태어난 김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항상 ‘경민이가 최고’라고 말해주셔서 장애를 의식하기는커녕 정말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는 말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 돌 때 열병을 앓아 양쪽 다리의 발육이 안 된 그는 어머니가 심어준 자신감 덕분에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심하던 시절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정상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명문대 일어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에서 처음 자신을 향한 사회의 벽을 느꼈다. “친구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고, 취직도 잘 하는데 나는 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가정 교사 밖에 할 수 없더라구요.”
차별은 오히려 기회가 됐다. 1983년 텍사스 엘 파소로 유학 온 김씨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해 1994년 라디에이터USA를 창업할 때까지 미국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며 풍족한 삶을 살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창업전선에 뛰어든 동기는 간단했다. “어릴 때 어머님이 항상 내가 최고라고 말씀하셨고, 남 밑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도 안 맞아 무작정 뛰어들었다.” 사업초기에는 자동차 정비소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아픈 다리로 하루에 수백 마일씩 운전하는 게 힘들었지만 거래업체가 늘어나면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매년 두 자리 수의 성장을 지속해 세리토스에 제2창고를 오픈한지 3년 만인 올 해 제3창고를 마련할 계획이다. 성공 비결에 대해 김씨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힘들 때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멀리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매달 수익의 10% 이상을 장애인 단체와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김씨의 꿈은 중도장애우를 위한 장애재활센터를 하나 세우는 것. 그는 “교통사고 등으로 성년이 된 뒤 장애를 입은 중도 장애우들은 선천적 장애우보다 사회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며 “마음의 상처 때문에 사회를 등진 그들을 위한 작은 안식처를 만들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여기저기 벌려 놓은 일이 많아 걱정”이란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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