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사람 하나 없는 삭막한 유학생활’
얼마 전 한국서 온 유학생이 친구 소개로 전화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상담요청을 해 왔다.
다른 상담 중이었으므로 2시간 후 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음이 다급했는지 10분도 안돼 와서는 너무 일찍 와 미안하다고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2년 전 한국서 대학을 한 학기 마치고 꿈에 그리던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공부하며 아르바이트하며 몸으로 때우다 보면 영어도 늘 것 같았고 점차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립하며 공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 몇 달간 친척집에서 기거하던 그녀는 그 친척이 보호자로서 갖는 강한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자신을 구속하고 감금하며 심지어 폭행까지 하더라 하며 그래서 그 집을 나와 친구들과 지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친구들과 지내면서 당장 의식주 해결을 위해 식당에 나가 일을 하게 되었고 점차 공부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못하게 되니 그저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서 약간의 학비를 보내주셨지만 아는 사람이 상황이 급하다며 며칠 쓰고 주겠다는 말에 그 돈마저 빌려주게 돼 등록을 미뤘고, 그나마 언어공부도 못하게 돼 새벽에 일이 끝나면 손님이나 주위의 친구들과 어울리다 자연스레 남자들과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제 공부는 뒷전이다. 지금은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서 영어 공부라도 하는 게 마지막 바람인데 이제 곧 체류신분이 불법으로 바뀌게 될 테니 어찌 해야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보란 듯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마음뿐, 이미 관계가 서먹해진 친척들에게도, 그렇다고 한국으로도 돌아가자니 자존심이 상한다며 긴 한숨만 내쉬었다.
복받치는 설움에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계속 눈물만 흘리는 그녀의 이야기 중 가장 기막힌 것은 지난 2년간 배운 게 있다면 ‘사람을 절대 믿을 수 없다’는 거였다.
유학 2년간 배운 거라곤 ‘인간을 신뢰해선 안 된다’는 거였다는 그녀에게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시작부터 헝클어진 그녀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이제 갓 스물이 된 그녀의 푸른 꿈을 꺾은 우리 이웃의 삶을 가만 들여다보니 그들도 처음엔 그녀와 같은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만나는 부모님들과 자녀교육 문제에 대해 의논하다 보면 많은 한인 가정이 체류신분 때문에 불안하지만 이웃과 나눠 봐야 도움은커녕 잘못된 정보로 인해 더 헛갈릴 뿐이라며 믿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오히려 진심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어 마음 문을 닫아버린 우리 이민생활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 자녀에게 어떤 교육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스러워지곤 했었다.
자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애쓰며 두드리다 보면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이웃이 진실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춰보고 확인해야만 내가 진실해질 수 있는 걸까. 그냥 서로 믿으면서 덧난 상처를 싸 매주며 살아갈 순 없는 걸까.
내가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 봐라 하는 마음은 우리의 진심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나는 비록 당했지만, 너는 내가 도와주마’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며, 내 눈으로 반드시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 는 안전한 감정의 환경을 우리 자녀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이다.
메말라 가는 우리 정서에 따뜻한 군불을 지피자. 불쏘시개로 강약을 조절해가며 은근히 데워진 구들 목에 함께 엉덩이 지져가며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그런 넉넉한 삶을 살아 보자.
지경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