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이렇게했다
조바심과 잔소리
스트레스 받은 아이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먹었는지 자판기를 두드려도 모니터에 글자가 뜨지 않는다. 눌러보고 또 눌러봐도 아무 흔적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어 그만 전원을 빼버렸다. 그리곤 또 다시 전원을 넣고 하기를 벌써 며칠째. 생각 같아서는 내다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어쩌나. 오늘은 인내심을 가지고 살살 달래며 한번 작업을 해보리라 굳게 마음먹고 앉아 컴퓨터를 켰다. 글자 하나를 치고는 어찌하나보자 하고 앉아있으니 슬그머니 내가 친 글자가 뜬다. 탁탁 치고 기다리고 있으면 꾸물꾸물 나타나는 글자. 답답하지만 나타나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반드시 글자가 나타난다는 컴퓨터 상태를 알고, 믿고 기다리고 앉아있으려니 ‘옛날 아들 사춘기에도 이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일을. 즉시 글자가 나타나 주지 않는다고 화면을 닫고 전원을 빼고 난리를 치듯, 그때는 정말 아무 소용도 없는 애를 혼자서 많이도 썼다. 언제나 저 TV를 끄고 공부하러 들어갈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 “빨리 끄고 방에 들어가 공부해!” 소리가 목까지 차는 걸 참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었는지. 그 말을 참고 5분 정도 더 있으니 아들은 TV를 끄고 방에 들어갔었다. 한 발 늦추기를 정말 잘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고, 그 잠깐을 못 참고 고함을 질러 서로 마음이 상한 적도 많았었다. 돌아보면 아이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계획도 있는 걸 언제나 내가 앞질러 가는데서 문제가 생겼었다.
얼마 전, 한인학부모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청소년 범죄’에 관한 세미나를 위해 연사를 초빙하느라 전화를 거는 등뒤에서 딸이 말하더란다.
“엄마, 경찰을 부를 게 아니라 심리 상담사를 불러야해.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다고 경찰을 불러? 우리들보다 엄마들이 먼저 상담을 좀 받아야 해. 엄마들이 더 문제야.”
학교에 가면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 아이들도 있고, 집이나 학원 가기 싫다며 밖에서 빙빙 도는 아이들이 많은데, 모두가 다 엄마의 잔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죽고 싶어” “외로워”가 요즘 아이들의 현주소라니 믿어지지 않았다.(정말 그 정도일까? 설마.) 그렇지만 옛날의 나를 돌아보면 아들이 얼마나 숨막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시라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곧 성적이 떨어질 것 같고, 친구들이랑 빈둥거리며 놀고 있으면 큰일났다 싶고. 좋은 과외선생을 찾아줘야 할텐데, 좋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해야 할텐데…. 내 마음엔 항상 조바심이 있었다. 그 조바심과 애태움이 가져다준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는 말이 있다. “엄마, 이 세상에서 나 보다 더 내 성적 땜에 고민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11학년 들어 성적이 떨어졌다고 나무라는 내게 한마디하고는 휙 나가버렸었다. 공부 못한다 스트레스 준다고 공부가 잘해지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라고 해서 공부를 할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는 느긋이 믿고 아이가 철들어 쫓아와 주기를 기다리며 사랑해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안일한 생각인가? 그러나 그 시절, 나의 잔소리 땜에 내 아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잠시라도 살았다면?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해진다.
<다음주에 계속>
류 민희
<전 서니힐스고교 한인학부모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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