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 떠돌던 할머니 신분 확인안돼 한국으로 못가
긴 여행에 지친 걸까. 시애틀의 노숙자 쉼터를 뛰쳐나온 김해봉(68) 할머니는 힘겹게 입을 떼며 “미국에 그렇게 오고 싶었건만 이제는 한국이 너무 가고 싶어...”라고 말끝을 흐렸다.
14일 오전 한인타운의 시온선교회에서 만난 김 할머니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 때로는 횡설수설하기도 하고 기억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4일 새벽 시애틀의 노숙자 쉼터를 뛰쳐나와 히치하이크를 수 차례 반복한 끝에 김 할머니가 도착한 곳은 사우스베이 호손시.
이 곳에서 마음씨 좋은 흑인여성 일레인 카터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김 할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다.
지난 1977년 미국에 이민온 김 할머니는 미국에 가족이 한명도 없다. 아이를 낳지 못해 한국에서 이혼당한 김 할머니는 미국서 한 남성을 만났지만 곧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김 할머니에게 남은 재산은 듀플렉스 아파트 한채와 자동차 뿐 마음 줄 사람은 없었다.
김 할머니는 “혼자 우두커니 집에 있으면 뭘 해...”라며 재산을 팔아 정신없이 미국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시애틀 노숙자 쉼터를 뛰쳐나왔을 때도 할머니의 배낭 안에는 여행 책자가 들어 있었다.
가슴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김 할머니의 상처는 꽤 깊다. 그는 시애틀 노숙자 쉼터에서 가족도 없고 애도 못 낳는 자신의 장기를 팔겠다는 수군거림이 어디선가 들려 정신없이 도망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할머니가 동생이 살고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에는 가야할 길이 험난해 보인다.
신분증과 여권 등을 모두 분실한 김 할머니는 카터의 도움으로 여권을 신청하려 했지만 이미 세차례 여권 분실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상태다.
김 할머니의 동생과 전화통화를 한 시온선교회 글로리아 김 선교사는 “동생이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정착한들 어떻게 30만원의 연금으로 살겠나”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현재 신분을 확인할 길이 없어 한국 귀환은 커녕 아픈 몸을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카터는 “워싱턴에 요청하면 여권이 나온다”며 “김씨가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 가닥 희망을 내비쳤다.
나른한 햇볕이 바닥에 반사되며 김 할머니의 시야를 가렸다. 김 할머니는 “나 몸 하나도 안 아파. 꼭 한국에 가고 싶네”라고 말하며 꿈을 이어 나갔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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