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 전쟁이 발발 한지도 55년이 되었다. 비록 총성은 사라졌지만 전쟁의 상처는 치유되기는커녕 오늘날까지 그 후유증이 계속 분출되고 있다.
북한의 침공을 당한 남한은 천문학적인 숫자인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입었고 거의 재기 불능 상태였으나 국민들이 애국심, 미국을 비롯한 유엔의 도움으로 국가를 보존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38선 전역에서 북한군이 남침, 침공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했음에도 북한은 아직까지 남한이 먼저 북으로 침공했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오늘까지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 공산 치하 3개월간 서울 시민의 생활은 공포와 기아뿐이었다. 만 3년간 전선에서 북한군과 싸운 한국군은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했으며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눈비 맞으며 수 십리 때로는 수 백리 길을 산 넘고 강을 건너며 걸어야 했다. 눈 위에 주저앉아 동상에 걸린 다리를 잡고 엉엉 울던 전우, 무좀 때문에 단검으로 발가락을 후비던 그 후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광경들이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무사히 살아 남은 사람들도 이제 70살이 다 넘었다.
한국 전쟁 때 16개국 유엔군이 참전했고 41개국이 군수 물자를 제공했으며 이중 90%를 미 미국이 담당했다. 또 한국 전쟁에서 미군은 5만4,000여명이 전사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한 신문이 보도 한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군에 입대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전보다 많은 젊은이가 부정적으로 대답했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 발발 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북한의 주장(남한과 미국의 북한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을 옹호하고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6.25를 직접 겪었던 기성 세대, 특히 사회 지도층들의 입과 용기는 왜 실종됐는지 알 수 없다.
초등학생 상대 여론 조사에서 가장 싫어하는 나라 중에 한국 전쟁 때 5만 여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한국을 지켜 주고 지금까지 한국방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미국이 포함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북한이 집요한 선전 선동을 한다고 해도 그들의 계획에 동조하고 전적으로 협조하는 자나 단체가 없었다면 초등학생들의 생각을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어 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6.25를 생생히 체험한 참전 용사들은 아들 손자들에게 6.25의 진실과 한국을 둘러싼 오늘날의 국내외 정세를 정확하게 들려주어야 한다.
원동희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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