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한국시장을 갔다가 한국갈치라는 선전을 보고 집어든 은빛 빛나던 갈치를 보니 어릴적 생각이 났다.
어려서 항상 많은 식구들로 북적거리는 밥상에서 생선이나 계란 등 맛이 있는 반찬이 있으면 소리 없는 젓가락 전쟁이 일어났었다. 그러니 엄마는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자고 으레 작은 재료로 양을 많이 하기 위해 생선은 주로 무나 우거지, 두부를 듬뿍 넣어 조림을 하고 계란은 물과 파를 많이 넣어 찜을 한다던가 불고기는 고기보다 버섯이나 양파를 듬뿍 넣어 양을 불리는 묘기를 부리셔야만 했다.
어릴 때 먹었던 생선이라야 꽁치, 고등어, 갈치, 동태가 전부이고 제사나 명절이나 되어야 조기 같은 생선을 겨우 구경할 수 있었다. 생선에 관해서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면이 하나 있다. 어려서 늘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살았던 나는 시장을 따라 다녔었다. 추웠던 겨울 아마도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엄마와 함께 생선가게로 향했다.
생선가게 아줌마의 뺨은 얼어서 발갛고 머리며 옷은 중무장해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엄마가 꽁치를 몇마리 고르자 생선가게 아줌마가 익숙하게 꽁치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내 옆 쓰레기 통에 넣는 순간 어디선가 검은 물체가 나타나 잽싸게 낚아채 가는 거였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냄새도 나서 엄마 치마속에 숨었다.
생선가게 아줌마는 익숙한지 엄마에게 설명을 했다. 추운 겨울이면 먹을게 없는 사람들이 생선가게며 야채 가게 주변에서 먹을 만 한 쓰레기가 생기면 재빨리 쓰레기통에 달려 든다고 말이다. 말을 들은 엄마는 자신도 넉넉지 않으면서 생선가게 아줌마에게 꽁치 머리 크게 잘라서 살도 좀 들어가게 하라고 하며 무척 마음 아파 하셨다. 그 후로 시장을 다니며 자세히 보니 그런 검은 물체 같이 담요 같은 망토를 머리까지 감고 다니며 야채가게며 생선가게에서 번쩍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당시만 해도 참 살기 힘들던 시절이었으니.
그 시절 먹었던 갈치는 비록 작고 얇아서 먹을 건 별로 없었지만 지금처럼 냉동이 아니라서 그랬던지 살이 부드럽고 고소해서 여간 맛있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함께 조려진 무는 갈치와 양념 맛이 배여 물컹하면서 얼마나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내렸던가.
비록 엄마가 했던 그 부드러운 맛의 갈치조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늘 먹던 냉동 갈치가 아니라 한국갈치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저녁 밥상 내내 갈치를 뼈 바르며 먹느라 밥을 오래 먹던 아이는 갑자기 젓가락을 놓으며 “엄마 너무 젓가락질을 오래 했더니 손에서 쥐날 거 같아. 그만 먹을래.?? 한다.
손가락이 아프다며 식탁을 벗어나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갈치조림을 하던 날 저녁 밥상에서 오빠언니들과 누가 더 많이 먹나 실랑이하며 먹었던 갈치조림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이제 다들 나이가 들어 많이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없는 나이들이 되었지만 기억 속에서는 항상 엄마는 젊은 시절 그대로이고 우리 형제들 모습도 클 때 그 때 그 모습들이다.
김영원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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