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 특집-잊혀진 고려인들
스탈린 소수계 억압 첫 희생, 수천명 처형
②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1937년 어느 가을. 수많은 고려인들을 태운 호송 열차 503호는 끝없는 대륙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1937년 8월21일 당시 소련연방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은 극동구 국경 지역에 사는 모든 고려인들을 중앙 아시아로 이주시키라고 명령했다. 고려인들은 단지 일본 제국주의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변방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100여년간 살았던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중앙 아시아 사막으로 버려지는 수난을 겪게 된다.
고려인들은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빼앗겼으며, 파멸의 벼랑 끝으로 내던져졌다. 이들은 스탈린의 소수계 억압 정책의 첫번째 희생물이었다.
소련은 당시 중앙 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광대한 지역의 농업 집단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스탈린은 연해주 농업 개발에 성공한 고려인들을 대거 이주시키기로 결정한 후 고려인들에게 자치구를 만들어 주겠다며 강제이주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2,500여명의 고려인들이 처형됐고 또다른 수천명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이주 통보를 받은 고려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간단한 식량과 가재도구만 챙겨갖고 화물열차에 몸을 실었다.
화물객차를 개조한 열차에 짐짝처럼 실린 이들은 매서운 시베리아의 삭풍 속을 40일간 달려 중앙 아시아의 사막에 버려졌다.
고려인들은 수십 대의 기차에 분산되어 실려졌기 때문에 이산가족도 발생했으며, 가는 도중 수많은 사람들이 시베리아 벌판에 죽어서 버려졌다.
여행 중 가장 곤란했던 것은 화장실이 없는 것과 먹을 것이 공급되지 않은 것, 그리고 강추위였다. 2-3일의 식량밖에 준비하지 못한 한인들은 마른 음식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고, 인적이 없는 기차역에 가끔 서면, 일제히 기차 밑으로 들어가 대소변을 보았다.
여행중 홍역이 발생해 어린이 사망률이 60%를 웃돌았고, 노약자와 임산부, 환자들이 죽으면 기차역 철로 옆에 언 땅을 파서 묻고 다시 출발했다.
1차로 124대의 수송 열차에 36,442가구, 171,781명이 중앙 아시아 10개 지역으로 수송됐다. 우즈베키스탄 16,272가구 76,525명. 카자흐스탄 20,170가구 95,256명.
지금은 6일이면 갈 수 있는 시베리아 철도를 고려인들은 40일이나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6,000㎞나 되는 이 길은 지옥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새크라멘토 지국-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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