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두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정진석 대주교.
정진석 추기경 서임 계기로 본 카톨릭 연보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한국의 두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되고 난 후 각계에서 한국 가톨릭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 천주교는 언제 전래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가톨릭 연보를 알아본다.
▲1784년: 이승훈, 베이징에서 그라몽 신부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음. 귀국 후 명례동(지금의 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을 중심으로 이승훈, 정약전 3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조선교회 창립.
▲1789년: 조상 제사 문제로 신자들이 박해를 받음. 이후 100년 이상 계속된 천주교 박해의 표면적 이유가 됨.
▲1795년: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들어옴으로써 조선교회 창설 11년만에 성직자 탄생. 전국 신자 수 4천여 명으로 늘어남.
▲1801년: 주문모 신부, 이승훈을 위시해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 3형제 등 남인과 학자들이 모두 처형되거나 귀향가는 대박해 일어남.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성직자 없이 30년 동안 조선교회가 크게 발전한 것에 감동, 베이징 교구에서 독립된 조선 교구를 설정하고 주교 임명. 프랑스에서 성직자들이 입국해 포교 활동 펼침.
▲1839년: 헌종 때 두 번째 대박해 일어남. 270여 명 순교.
▲1845년: 김대건, 상하이에서 페레올 주교의 집전하에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 최초의 신부가 됨.
▲18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849년: 25대 철종 즉위 후 1863년까지 천주교는 보호를 받고 발전하게 됨.
▲1866년: 대원군 쇄국정책으로 1871년까지 박해가 연쇄적으로 계속됨. 1만여 명 순교.
▲1887년: 한불수교조약 발효로 종교의 자유 얻게 됨. 프랑스 성직자들의 자유로운 포교 활동이 허락돼 1만2천여 명의 신자가 늘어남.
▲1892년: 명동 대성당 건립.
▲1896년: 대원군 부인 민씨가 마리아로 세례를 받음.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김수환 추기경 서임.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 방문. 수많은 순교자들 중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주례로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서울서 개최.
▲2006년: 정진석 대주교 한국 두번째 추기경으로 서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