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이 없다. 한인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이다. 별별 엉터리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데도 제대로 된 비평을 찾기란 쉽지 않다.
비평이 역할을 하려면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 권위는 현안을 꿰뚫는 지식과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 위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독이 묻은 칼날은 곤란하다. 비평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칼이어야 한다. 비평에는 용기가 필수적이다. 그 용기는 단단하되 겸손했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 중에서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비평은 제 노릇을 하기 힘들다.
한인 문화예술계의 비평 부재는 심각한 문제다. 미술, 음악, 문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평부재 현상은 보편화돼 있다. 들려오는 것은 요란한 자기 선전뿐이다. 자가발전의 낯뜨거운 칭송이 봇물을 이룬다. 때로 비평의 옷을 걸친 것도 있지만 벗겨보면 근거없는 폄하거나 비난일 때가 많다.
타운 화랑가에는 전시회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시작품의 편차는 크다.’이발소 그림’수준을 겨우 벗어난 것에서부터 평생에 걸친 노작에 이르기까지. 사진전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누구도 좋은 전시회를 구별해서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람객이 알아서 가야 한다. 그렇고 그런 전시회일수록 오프닝 리셉션은 더 성황을 이루는 것이 타운 전시회의 실상이다.
음악은 좀 더 심하다. 어떻게 된 셈인지 요즘은 툭하면’세계적’이다. 사실상 오케스트라 지휘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되는 지휘자도’한국이 낳은 세계적인~’이다. 스폰서만 잘 물면 짝퉁 지휘자의 짝퉁 음악회도 만원이다. 그런 음악회일수록 객석의 환호와 갈채는 요란하다.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픽픽 코웃음을 치는데도-. 음악회를 두고 온갖 이야기가 꼬리를 물지만 뒷이야기는 항상 뒷이야기로 그친다. 솔직하고 용기있는 비평이 없는 한 한인 음악계의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학쪽도 가관이다.’빈곤한 소재, 빈약한 상상력,구태의연한 이미지에 식상’정도의 솔직한 시평은 불특정 다수가 대상인 문예공모전 심사평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문인들이 미주문인의 작품을 말할 때 공치사와 인사치레만 늘어놓는 것은 이제 관례화 되다시피 했다. 그 인사가 너무 지나치다. 과공은 비례라고 하지 않던가. 간혹 미주 문학지에 실리는 작품평을 읽으면 이게 문학평론인지 의심스럽다. 이런 평론을 왜 쓰나.
이런저런 인연으로 시집과 소설책 등에 쓴 발문 중에는 쓴웃음이 나오게 하는 것들이 많다. 남이 애써 만든 책에 초칠 일이야 없겠지만 알량한 문학지식을 이용한 온갖 말의 성찬은 오히려 ‘그 책의 진실’을 숨긴다. 때로 소설도 아닌 것이 소설이란 이름으로, 시도 아닌 것도 시란 이름으로 발표되지만 아무도 여기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독자의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글들이 겁없이 문학작품이라고 발표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 되면 비평의 역기능은 심각해진다. 독자와 관객을 호도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비평은 비난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칭찬과 격려가 있어야 한다. 바른 비평이 없으니 좋은 시가, 좋은 음악회가 인정을 받지 못한다. 좋은 예술가가 묻혀 버리는 것이다. 비평은 그 작품을 빛과 향기에 맞는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같은 비평부재 현상이 초래된 것에 대해 전혀 자유롭지 않다. 이 마을의 언론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달 것인가. 그 어느 때 보다 용기있는 비평이 그립다.
안상호<부국장 특집1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