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권 (USC 의대 교수)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도종환 시인의 시 가운데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가 있다. 얼마 전 로스앤젤레스 한 대형교회의 목사는 이 시를 빌려 우리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이렇게 위로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흔들리며 피는 꽃과 같습니다. 낯선 타향에 와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흔들리지 않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이민자는 없습니다. 흔들리며 바람과 비에 젖어가며 핀 꽃잎처럼 우리는 흔들리며 바람과 비에 젖어가며 아름답게 꽃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흔들린다고 쓰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리면서 오히려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거친 비바람에 흔들릴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생각과 말과 글이 다른 나라에서 살아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아늑한 고향을 등지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이빨을 꽉 깨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느껴보지 않은 이민자가 어디 있겠는가. 바람불고 비 올 때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얼마나 다짐했는가. 그런데도 ‘흔들리면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인생’이란 말은 우리 마음을 너무도 아리게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흔들려야 하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고 아직도 이렇게 흔들려야 하나. 이런 낙심케 하는 물음들은 힘든 삶 가운데 서있는 우리들을 더욱 더 흔들어 댄다.
하지만 우리 이민자들이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뜨내기’로서의 불안감 즉 인시큐리티(Insecurity)야말로 우리들의 삶을 전진하도록 만드는 힘의 근원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주인들이 가지는 안정감은 비록 안락함은 줄 수 있겠지만 안주와 나태로 곧 잘 변질되어 버린다. 돌이켜 보면 사람들은 안주하고 있을 때보다 유동적일 때 더 큰 역사를 이루어왔다. 오랜 세월동안 광야를 헤맸던 유태인들이 그랬고 바닷물 닿은 모든 곳에 다 살고 있다는 화교들이 그랬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도 결국 이민자들이었다.
낯설고 새로운 곳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늘 긴장해야 하며 새로움을 잃지 말아야 했다. 고여 있기보다는 흘러야 하고 멈춰 있기보다는 항상 움직여야 했다. 이번 주 타임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3억 인구 중 80%가 백인이며 아시안은 약 1,300만명 정도로 4.4%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2005년 미국 125개의 의과 대학 입학생 17,004명 중 아시안 학생의 비율은 20%(3,349명)에 달했다. 의대뿐만이 아니라 과학과 공학 및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아시안 학생의 우수성은 두드러진다.
이민 부모들의 불안감은 자식교육으로 직결되었고 남의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존 전략이 절실했다.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꽃은 절대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다. 흔들릴지라도 낙심하지만 않으면 우리들 마음에 늘 존재하는 인시큐리티는 조만간 오히려 엄청나게 큰 힘으로 발휘될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이다.
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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