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지원서에 기입해야 하는 항목중 평점(GPA)과 함께 석차를 기입하는 난이 있다. 웬만큼 큰 고등학교에는 보통 졸업반 학생들이 6백 내지 7백명 안팎이다. 대학원서에 써넣는 평점은 10학년과 11학년 2년 동안의 학과성적만으로 계산한 수치지만 졸업반의 석차를 매기는데는 9학년 들어와서부터 11학년말까지 3년 동안의 전과목성적을 포함해서 계산한 수치를 사용한다. 따라서 두 수치가 똑같지 않을 경우가 많다.
평점을 기준으로 졸업반 600명 학생을 수석, 차석으로부터 시작해서 내리 600등까지 등수를 매기는 작업을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시하고있다.
학생들의 성취를 평가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해야할 작업이긴 하지만 600명중 599등이나 600등으로 나온 학생들이 자신의 꼴찌 석차를 보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를 생각해볼 때 과연 석차 매기기가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등수를 매기는 것은 물론 학교에서만 실시하는 일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데에서는 어디에서나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매년 대학의 순위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세계적 부호들의 재산순위, 순익 규모로 본 기업의 순위, 세계 여러 국가의 국민 소득순위 등 등수 매기기는 우리가 살고있는 경쟁사회에서 피할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어느 분야에서든, 어느 그룹에서든 수석이 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남달리 명석한 두뇌와 꾸준한 노력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성취이기 때문이다. 수석을 차지한 주인공에게 칭찬과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수석입학이나 수석졸업이 한인들에게 특별히 더 큰 의미를 품고있는 이유는 옛날부터 장원급제를 인생 최대의 영예로 우러러보았던 역사적 전통 때문이기도 하다.
요즈음에도 몇십년전에 수석입학 또는 졸업을 했다는 경력을 인생이력서에서 하이라이트로 소개하는 것을 볼 때 이 ‘수석 컴플렉스’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을 우리들의 문화적 특성인 것 같다.
수석 중에서는 차석을 멀찌감치 따돌린 특별히 우수한 수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명문으로 알려진 고등학교의 졸업반 석차를 보면, 톱 5퍼센트 가량의 학생들이 소수점 두자리 또는 세자리수라는 아주 근소한 점수의 차이로 수석에서부터 30등 또는 35등의 석차로 매겨지는 것을 본다. 학교에 따라 4.0 이상의 평점을 받은 학생들을 모두 수석으로 인정하는 복합수석제를 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소수점이하 두자리 세자리수의 의미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금년에 수석을 했다고 마냥 즐거워할 수도 없는 것이 또한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이다. 수석은 차지하기보다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나만큼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선뜻한 느낌을 주는 무한경쟁사회라는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서 오늘의 수석이 내일의 꼴찌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이 결코 상상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 한명 뿐인 수석이 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일급 인재가 되는 것이 훨씬 의미있고 자랑스러운 성취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같은 일급 인재들이 때로는 경쟁을 통해서, 때로는 협동을 통해서 장래 사회 각분야에서 리더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을 갖춘 젊은이들을 일급 인재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다음 회에 계속해서 이 주제에 대해서 검토해보기로 한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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