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정말로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어울러 살고 있지만 우리 한국인들만큼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손으로 꼽아도 몇 되지 않는다.
특히 자식의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고 있는 우리 이민자들에게 가장 큰 아메리칸 드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이나 야후의 창립자들처럼 미국 내에서 독보적 존재가 되면 모르겠지만 보통의 한국 부모들은 자식들이 의사, 변호사 약사 등 아시안으로 미국에서 살면서 차별을 받지 않을 전문인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날이 갈수록 의대, 법대, 그리고 약대와 같은 Professional School 진학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 세대에서는 열명 중에 한명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요즈음은 세명 중에 한명이 대학을 가고 그 중 상당수가 그런 전문학교 진학에 꿈을 두고 있다. 더구나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것은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주변상황은 누구에게나 다 비슷하게 주어지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는 것은 그 학생과 특히 부모의 노력에 달려 있다.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 입혀주는데 너는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냐”고 아이들에게 무조건 질책하는 아버지가 있다면 십중팔구 그 아이들의 장래는 암울할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세월은 변했다.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그 부모들이 먼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식에게 더 많은 정성을 기울이라는 이야기다.
몇 달 전 9학년 학생 한명이 다짜고짜 필자의 연구실로 찾아왔다. 만날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한 장도 채 안 되는 자기의 이력서와 성적표를 불쑥 내밀고는 자기 아버지가 차이나타운에서 가방수리를 하고 있는데 자기는 나중에 꼭 의사가 되어 고생하는 아버지를 돕고 싶다면서 의과대학을 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성적표를 한번 쓱 보니 시들시들(C, D) 하였다. “어쭈 이 놈 봐라. 바빠서 정신없는데 약속도 하지 않고 무조건 찾아와서는” 하는 괘심한 생각이 들어 “너 이 성적으로 의대 못가”라고 냉정히 돌려보내려다 그래도 기특하다는 생각에 한 시간 동안 마주 앉아서 그의 길지도 않은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차이나타운의 한 빌딩의 지하에서 구두나 가방을 수선하는 초라한 아버지는 그 어린 아들에게 돈은 잘 주지는 못했지만 늘 마음이 통하는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버지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그 아이와 대화를 할 줄 알았다. 더 놀라운 것은 반대로 그 아이로 하여금 가방 수선공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본 멸시와 서러움으로 가득 찬 세상은 그의 아버지에게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새로운 각오를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그 아버지의 교육 수준이 높진 않겠지만 그의 방법은 가장 효과적이고 탁월한 교육방법이 아닐 수 없다. 내 앞에 서 있던 그 아이의 눈에선 의대 진학 이상의 밝은 미래가 보였다.
새해가 또 밝았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빛의 속도와 빠르게 느껴진다. 그에 비해 아이들의 학교 성적은 거북이처럼 더디다. 그 사이에서 부모들의 가슴은 숯덩이처럼 타버렸다. 부모들 속 타는 줄 모르고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서 자식이 ‘웬수’라고 했던가. 그런 아이들조차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부모의 속 타는 인내와 대화이다. 다른 방도가 없다. 그 가방 수선공 아버지도 처음부터는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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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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