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복식품 다운타운 공장내 참기름 제조기 앞에선 황상봉 사장. 수복표 참기름은 한국 방문 선물로도 곧잘 나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천규 기자>
‘장 담그는 공학도’
전통 방식으로 된장·간장 제조 33년
한국의 전통방식으로 장을 담근다는 ‘수복식품’의 LA다운타운 공장을 찾은 지난 25일. 공장 가득 메주콩의 구수한 향내가 가득하다.
된장과 간장, 참기름이 주 품목인 이 업체의 황상봉(64) 사장은 한인업계에서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33년 전부터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한국 토종의 장맛을 만들어 팔겠다고 나선 것 하며 ‘된장 간장 회사’ 사장과는 꽤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황 사장의 이력도 그렇다.
지난 67년 미국에 건너 온 그는 UCLA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공학도가 ‘어쩌다’ 간장 공장 사장이 되었을까? 손맛이 좋은 함경도 출신 모친은 이민 온 후 오랜 기간 병을 앓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모친이 70년대 초반 어느 날 제대로 된 장맛을 보고 싶다는 말에 그는 일본계 식품공장까지 샅샅이 뒤져 메주콩을 사다가 집에서 직접 된장을 담갔다.
“특별히 장 만드는 법을 배운 적은 없지만 원래 요리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어깨 너머로 배운 어머니의 방법대로 해보니 맛이 나더라구요. 요즘은 장 만드는 사람도 장인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어릴 때는 모든 집에서 장을 담궜거든요.”
수복식품의 탄생은 어느 새 ‘필연’으로 다가왔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74년 미 항공 전자산업은 최악의 침체기를 맞았다. 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을 동결했다. 그나마 10-15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이력서를 내밀 수 있던 시기였다.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하려면 3년은 족히 기다려야 했어요. 그러던 차에 한 마켓 업주의 이야기가 솔깃하더라구요. 이 업소가 한국에서 된장을 들여오던 중 구더기가 나면서 그만 공항에서 폐기 처분됐다는 거예요.”
된장에 관해서라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던 그는 “그럼 미국 땅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이스트 LA에 된장 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기대에 못 미쳤다. 주 수요층인 한인 이민자 수가 너무 적은데다 한국에서 된장 등을‘공수’해 먹던 시절이라‘사먹는 된장’이 파고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스트 LA에서의 힘겨운 10년을 보낸 수복식품은 리스 문제로 80년대 초반 현재의 다운타운 공장으로 이전했다. “제대로 된 공장 하나 만들려 보니 기계 셋업하는 데만 7-8개월이 걸리는 등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그러니까 아 이게 천직이구나 하는 오기가 듭디다.”
그래서 일까.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했다. 한번 먹어본 한인들의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수요가 급증했다. 80년대 한인들의 이민러시도 호재로 작용했다. 황 사장도 마켓들을 직접 발로 뛰며 세일즈에 나섰다. 업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간장, 된장 맛을 보게 하는 방식으로 거래처를 트기도 했다.
부침이 심한 타운업계에서 강산이 세 번 이상 변하도록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지킬 것은 지킨다’는 원칙이다. 바로 웰빙을 추구하는 제조방식을 말한다. “우리 간장의 경우 양조가 아닌 전통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최소 3-4개월 숙성을 거쳐야할 정도로 판매까지 기간이 더 깁니다. 또 방부제를 전혀 넣지 않으니 고객들의 항의 아닌 항의를 받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내 가족이 먹기 꺼리는 음식은 결코 만들지도 팔지도 않겠다는 경영철학을 고수했습니다.”
얼마 전 본보 요리 섹션은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간장을 조사한 적 있는 데‘수복표’는 한국과 일본의 유명 브랜드와 나란히 이름을 내걸었다.
“10년만 젊었어도 이것저것에 뛰어들었을 지 모르겠다”고 웃음 짓는 그는 “지난 30여년간 그랬듯 앞으로도 장류 생산에만 전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13)680-4432
<이해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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