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으니 일이 즐겁다, 일이 즐거우니 능력도…
열정이 있으므로 능력이 있으므로 평가는 저절로…
“얼굴도 이쁘고…” “키도 훤칠한데…”
지난 1일 저녁 프리몬토 메리엇호텔. 미주 한인여성 최초로 은행총수에 오른 민 김 나라은행장의 북가주 순회 취임식장에 모인 사람-주로 남자-들 가운데 몇몇은 김 행장과 인사를 나누고는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놀라움과 부러움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러나 뒤집어 곱씹으면 이는 그만큼 남성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던지지 못했음을 내비치는 말이기도 했다. 게다가 능력있는 여자는 얼굴이 대개 못생기고 어딘지 모르게 몸매도 그저그렇다는 경험칙 혹은 기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정작 민 김 행장에게는 ‘일 앞에 성별은 없었다.’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몇몇 언론사 대표들과 함께 식장 한켠에서 상견례 자리를 가진 그는 행장에 오르기까지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남성적 우문(?)에 싱겁다 싶을 정도로 간명한 통성적 현답을 내놓았다.
“어떠한 인더스트리(산업분야)건 간에 자기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할 때는 평가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은행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전공으로) 재정학을 공부했고, 은행에 들어가서도 텔러부터 다 거치면서 항상 재미있게 할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일이 힘들다, 그런 것보다는 항상 즐거웠다” “열정을 갖고 즐겁게 해야 된다” “은행장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다른 생각은 안해봤다”는 등 동어반복적 말을 덧붙이면서 “은행업무가 서비스”라며 서비스 분야에서 여성이 오히려 두각을 나타낼 수 있지도 않느냐는 뉘앙스를 비치기도 했다. 은행장이 됐으니 체면상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음을 되풀이 강조한 말로도 들렸다.
따라서 여성들이여 열심히 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는 식의 여성용 멘트를 내뱉지도 않은 채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러분의 도움과 지지가 없으면 공허하다”는 등 남여 장벽을 넘어선 포부와 당부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은행장에 선임되기 전 두 차례나 은행장 유력후보로 경합을 벌이다 막판에 미끄러졌던 기억을 누군가 되새김질할 때도 민 김 행장은 아픔 기색 전혀 없이 “삼세번만에 됐습니다”라고 말해놓고는 적이 큰 소리로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또 “행장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으니까…” 하는 말로 두번의 낙마가 꿈 일그러짐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을 새삼 들추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앵커우먼을 꿈꾸던 여중생 시절 부모 따라 미국이민을 온 1.5세 민 김 행장은 중고교 시절 영어장벽을 뛰어넘은 뒤 USC에서 재정학을 전공하고 1982년 LA 윌셔 스테이트뱅크의 오퍼레이션 오피서로 은행계에 몸담기 시작했다. 이후 한미은행을 거쳐 1995년 나라은행으로 옮겨 지난해 은행장에 오르기까지 한인여성 최초 론오피서, 첫 지점장, 최초 전무 등 승진할 때마다 신기록을 세웠다. 은행장 선임으로 신기록행진의 또다른 장을 연 그는 기본연봉만 32만5,000달러에다 두둑한 보너스 등을 합쳐 연 50만달러 안팎의 뭉칫돈을 벌어들이는 한인여성 최고연봉 은행가의 기록까지 덤으로 챙기게 됐다.
본보에 생활법률 칼럼을 기고해온 남편 김기준 변호사(형사법 전문)와의 사이에 아들(UCLA 졸업반)과 딸(UC샌디에고 3학년)이 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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