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장을 뽑아서 거미줄을 만드는 거란다. 그 거미줄로 새끼들 집도 짓고 새끼들 먹이도 잡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새끼들 다 떠나보낸 늙은 거미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을 꺼내 거미줄을 치고 있다면 아가,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수의를 짓고 있는 거란다.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거미줄이란다. 거미는 그렇게 살다 가는 거야. 할머니가 검은 똥을 쌌던 그해 여름, 할머니는 늙은 거미처럼 제 거미줄을 치고 있었지.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박제영(1966~) ‘늙은 거미’ 전문
내장이란 내장 다 빠져나가고 껍질만 남아 바싹 말라버린 늙은 거미. 저것이 내 할머니이고 어머니이고, 대대손손 슬픈 내력을 지닌 우리들의 조상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문득 올려다보는 그믐달이 영락없이 늙은 거미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한 오라기 남은 당신 뱃속의 내장을 뽑아내 마지막 수의를 짓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으로…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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