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이번에는 기르는 식물의 원수가 매끈한 오이의 녹색 표피를 독침으로 쏘아서 상처를 내어 팔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꿀벌들이었다. 하지만 상처 난 오이는 어머니의 손을 거쳐 맛있는 김치가 되었다.
수박농사는 아직 틴에이저도 채 안 된 뭉환 오빠의 몫이었다. 한 번은 내가 멍청하게도 수박 한 개를 꼭지만 잡고 처 들었더니 물론 그대로 깨져버렸다.
커다란 수박이 주렁주렁 많이 열려있는 밭은 그 달라붙은 넝쿨이랑, 손바닥 모양의 (장상형)잎사귀랑 해서 멋진 전경을 이룬다.
그러나 워낙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수박은 일 년 동안만 하고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손이 간 채소농사는 가지와 고추재배가 가장 수확이 컸다. 두 작물은 수요도 많았거니와 해충과 악천후에도 저항력이 강했다.
그리고 수박과는 달리 일 년 이상 수확이 지속되는 농작물이었다. 가지는 대개 아시아인들이 일식 뎀뿌라나 중국요리에 많이 쓰는 길고 가느다란 종류였고, 더러는 부엌 뒷밭에 심은 이탈리아 종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필리핀계 채소상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포동포동한 가지를 싸게 사갔다.
토마토는 뭉환 오빠가 기른 것이 최상품이었다 (제 5장 참조).
채소는 팔기 위해서만 기른 것은 아니었다. 상추, 깍지강낭콩, 아욱 콩, 부로콜리, 고구마, 타로(taro: 토란) 등은 집에서 쓰려고 재배했다. 아욱 콩은 철사와 각목을 엮어 만든 큼직한 온상 위로 기어오르며 무성하게 자랐다. 거기는 애들이 숨어 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떠돌이 개 포획원이 감찰증 검사를 나오면 우리 집 개 세 마리를 거기에 숨겼다. 어쩌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개도 먹여주고 해서 애완동물이 넷이나 되는 적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어느 누구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다.
감찰증을 조사하려고 우리가 사는 먼 정글까지 검사 나와서 “개 면허증”값을 내라는 건 웃기는 일이었으나, 어머니는 애들 얼굴에 겁먹은 표정이 씌어있는 걸 보시고는 조사관에게 우리 집 개를 뺏기느니보다는 돈을 지불하는 게 나을 거라 싶어 그렇게 하셨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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