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는 감정 삭이는 기술 습득해야
대니는 지난해 새 학년 시작 때,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학 온 12학년 학생이다.
졸업반 학생인 만큼, 우선 지난 3년 동안 졸업 필수과목을 다 이수했는가를 검토해서 새 학년도의 학과목선정을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전반적으로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필수과목은 모두 이수했지만, 졸업에 필요한 선택과목 두 개를 이수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대니를 불러서, 다음해 6월에 졸업하려면 이 두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고 말을 꺼내자마자, 대니는 대뜸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아니 그전 학교의 카운슬러는 아무 소리도 안했는데, 왜 갑자기 ‘당신’은 없는 문제를 만들어내서 내 졸업계획을 망가뜨리나”는 거친 항의였다.
기습을 받은 나는 잠시 망설였다. 잔뜩 화나 있는 열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학교 규정을 내밀면서 마주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다. 또 아무리 한 학교에서 근무하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동료인 전 학교의 카운슬러를 비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카운슬러들의 직속 상사인 교감에게 연락해서 문제 해결을 부탁하였다.
다음날 대니가 찾아왔다. 졸업에 필요한 두 과목을 이수하겠다는 말과 함께 어제 선생님께 무례하게 대한 것에 사과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사과만 받고 그냥 보낼까 하다가, 직업상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얘, 생각치도 않았던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에 우선 화가 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 그러나 앞으로는 화를 내기 전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침착하게 생각해 보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네가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충동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습관이 되면, 앞으로 사회생활 하는데 지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생각치도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화를 내기보다는 침착하게 문제 해결법을 강구해 보라고?” 천연스럽게 충고를 해주었지만, 과연 나 자신을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실천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고 실소하고 말았다.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 중에서 본인에게나 타인에게 가장 부정적인 영항을 끼치는 감정이 분노의 감정이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분노관리에 대한 세미나를 자주 열어서 분노조절(anger manage-ment)을 가르쳐 주는 이유는 잘 다스리지 못한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분노를 느꼈을 때 무조건 참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 수 있다.
부당한 처우, 인격 모독, 신체적 위협을 당했을 때 참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상대방에게 대응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권리를 확보하는 빠른 길일 수 있다.
자녀들에게 어떤 경우에 화를 참아야 하고, 어떤 경우에 참지 않고 응당한 대응을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생긴 것이 다르다고, 영어를 못한다고 놀림을 받았을 때, 참고 지나가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한대 치라고 해야 할까, 부모로서 난감한 입장이 아닐 수 없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내는 습관은 장차 사회생활을 할 때 결코 이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 참기보다는 절제된 화를 통해서 정당하게 대처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느냐 참지 않느냐를 슬기롭게 결정하는 능력은 연령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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