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열면 세상이 보인다’
▶ ‘처음처럼’
처음... 사람들은 처음을 기념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생일을 기념하는 이유는 그 날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결혼기념일은 두 사람이 만나 처음 결혼 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수 없이 다녀온 사람이라고 해서 출입국 날짜를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에 살기 위하여 처음 도착했던 날짜만큼은 기억합니다. 처음, 첫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첫 아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강보에 쌓인 내 아이를 간호사가 처음 보여주던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니 아버지야, 아버지. 잘해줄게. 정말 잘해줄게”. 지금은 나보다 훌쩍 커버린 그 첫 아이에게 누군가 잘해주고 있느냐 물으면 그렇다라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처음에는,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을 잊지 못하는 것인가 봅니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하여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사람이 20년 20일간, 그중에서도 5년 가까이는 독방에서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다시 나왔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자기 인생의 처음을 되 집어 보지는 않았을까요? 아니, 어쩌면 형무소에 갇히던 그 처음 순간부터 그는 수 없이 자기 인생의 처음들을 되 집어 보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영복의 ‘처음처럼’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저자는 세상에 나온 이후 자기의 처음자리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다가 현재는 한국의 성공회대학 석좌교수로서 남아 있는 인생의 처음들을 새롭게 경작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서화 에세이집입니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에 따른 짧은 단상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이 저자로 하여금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 내게 하였을까요?
저자는 웅변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담아 놓은 글들은 어떠한 웅변가의 말 보다 힘이 있고 울림이 있습니다.
그 울림은 자동차 경적과 같이 울렸다 사라지는 울림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을 흔들어 대는 울림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밝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이 말은 ‘처음은 처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새로운 처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지나온 처음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새롭게 시작되는 처음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려집니다.
살다 보면 지우고 싶은 처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처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처음에 우리는 더욱 더 많은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저자가 감옥에서 붓글씨쓴 글자 중에 ‘좋은 쇠는 뜨거운 화로에서 백번 단련된 다음에 나온다는 뜻’의 ‘백련강’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사람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옮겨 놓은 그 ‘백련강’이라 붓글씨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마주 대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제 다시 처음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 모두 이 책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처음을 생각해 보고 또 다른 처음을 계획하게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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