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일곱 살짜리 한성이는 프랭크 오빠가 풀 깎은 게 못마땅해서 들쑥날쑥한 풀은 카펫처럼 균등하게 바짝 다듬고 접시꽃과 석죽을 심었다.
한편 라우할라 잎을 표백해야 하는 거창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주시는 미세스 코쏘라가 힐로에 사는 어떤 여자 한 분과 줄이 닿아서 우리한테 기술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분의 방법은 라우할라 잎을 비눗물에 담갔다가 꺼내서 햇볕에 말리는 거였다.
한데 잎사귀를 유황에 넣어 찌는 중간 단계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작업장에 인접한 욕조 옆 공간을 이용해서 슬라브로 유황 찜 실을 지으셨다. 어머니는 프랭크 오빠를 시켜서 물어보고 관찰을 하도록 하셨다.
그렇게 해서 정보를 좀 얻기는 했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굴복을 모르는 부부(우리 부모님)는 온갖 세척제를 다 이용해서 실험을 계속했다. 비눗물의 양과 거기에 잎을 담가두는 시간을 재보고 유황 찜질도 실험했다. 그러기를 몇 달, 두 분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드디어 표백과정을 완성했다. 우리는 곧 라우할라 짜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버지는 닭장철사를 이용해서 건조용기(트레이)를 조립하셨다.
트레이 양쪽에는 나무틀을 부착시켰다. 그 건조용기는 생 라우할라 잎을 환기시키는데 이상적이었다. 잎들이 응축되지도 않고 곰팡이도 안 생겼다. 라우할라 생잎을 뜨거운 물로 데워서 찜질을 한 다음에는 나선형으로 돌돌 말아가지고 건조트레이에 담아 낮에는 볕에 쬐이고 밤에는, 그리고 비가 내릴 때마다, 집안으로 들여왔다. 날씨는 라우할라 사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거나 누가 “비”라고만 해도 우리는 모두 밖으로 뛰어나가 일렬회대를 지어 건조트레이를 다 안으로 들여왔다. 생잎이 희어지면 건조과정은 끝내고 잎들을 말아서 길고 자그마한 뭉치를 만든 다음 고리에 매달아서 저장했다.
토요일마다 부모님은 식탁매트, 지갑, 바구니 등 우리가 짜 만든 물건 일주일 분을 잘 싸가지고 Model T 뒤에 싣고 힐로시내로 나가셨다. 우리는 두 분이 집에 돌아오시는 걸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퇴짜 맞은 물건이 없기를 바라면서. 처음엔 경험부족으로 지갑과 식탁매트 몇 개가 되돌아왔다. 차를 몰고 돌아오시는 부모님의 얼굴모습만 봐도 우리는 다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화난 얼굴이고 어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이면, 우리는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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