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을 지으면서 어머니는
새하얗게 솔질한 운동화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그때부터 운동화는 가마솥에 귀처럼 붙어서
불과 물 사이 새싹의 꿈 태우고 밥으로 태어나는
쌀들의 빨라지는 맥박소리 들었을 것이다
무쇠 솥 뚜껑 사이를 비집고 흐르던
그 뜨거운 아우성 보았을 것이다
가끔은 너무 바짝 귀를 댔다가
부글부들 끓는 소리에 데기도 했던 운동화,
잠시 뜸을 들이며 쌀들 호흡을 정리할 때
젖은 몸 생의 열기로 말라가던 운동화,
사람의 하룻밤이 왜 따뜻했는지
사람의 허기가 어떻게 가라앉는 것인지
운동화는 모두 부뚜막에 앉아 들었던 것이다
나의 길 발 지문으로 새겨놓고
지금은 늙은 어머니처럼 구석에 버려진
어린 시절의 저 운동화 한 켤레
길상호 (1973~) ‘한 켤레 운동화’ 전문
부뚜막과 함께 사라진 모습이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겨울철 운동화를 말리는 곳은 당연히 부뚜막이었다. 그리고 솥단지라는 것은 단순한 식기의 의미를 넘어 ‘식솔들의 목숨을 이어주는’ 도구로서의 대단한 함축미를 갖게 된다. 솥에 뭔가를 넣고 끓이기 위해선 불을 지펴야 하고, 그러므로 하룻밤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온기를 얻음과 동시에 허기를 달랠 수 있다는 것. 시인은 문득 어린 시절 부뚜막에 말리던 운동화를 떠올리며 생의 의미를 되짚어봤을 것이다. 밥을 벌기 위해서 한생 지문처럼 찍을 수밖에 없는 발자국의 의미까지도.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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