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역 앞 코아빌딩 꼭대기에 빙어 닮은 별 두엇 뜬 저녁이었다 늙은 노새 같은 리어카신발가게의 신발들 위로 컴컴한 삭풍이 쏟아지던 저녁이었다 순대 국밥집 골목길을 타고 온 사내 둘이 비틀거리며 신발 속에 부푼 발을 디미는 동안 씨발, 씨발, 도 함께 쑤셔 넣어지던 저녁이었다 종일 누군가의 따듯한 발목을 기다리던 신발들이 모처럼 그 발목에다 제 얼굴 비벼보던 저녁이었다
김정희(1958~) ‘해후’ 전문
땀내와 술 냄새를 풍기며 리어카로 다가왔을 사내들은, 신발에 발이 잘 들어가지 않자 욕지거리를 해대며 억지로 찔러 넣는다. 국밥집에서 나와 리어카에서 파는 신발을 고르고, 거기다 욕지거리까지 해댄다면 필시 가난한 노동자일 확률이 높다. 헌데도 이 시는 매우 따뜻하게 읽힌다. 퉁퉁 부은 발목을 종일 기다려줬던 신발이 있기 때문이다. 춥고 어둡게만 느껴지지 않는 가난. 욕도 욕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것이 바로 서정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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