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일이 끝나면 그 이름 없는 개는 어머니와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새로 찾은 보호자 역할에 행복을 느끼며. 어머니는 놈을 Good Boy라고 불렀다.
중년 여인이 여윈 개를 데리고 비포장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노만 록크웰(Normal Rockwell(1894-1978), 미국 삽화가) 화백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영흥이와 해리는 학교도 다니랴, 김치도 만들랴, 혼자의 시간이 없었다. 사업이 잘 되는 만큼 작업량도 늘어났다.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면 방법은 보통 때보다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었다. 우리한테 달리기는 타고난 재주나 다름없었다. 특히 해리는 바람처럼 잘 뛰었다.
그런 운동기술을 알아본 호우(Hoe)씨는 어느 토요일 아침 해리더러 자기가 코치하는 트랙경기에 나오라고 초청했다. 해리는 멀리뛰기를 포함해서 4종목에 들어가 겨루었다. 그리하여 크로스 칸추리 경주에서는 친구들이 응원을 해주는 가운데 1등을 했다. 해리의 제 1팬은 바로 자기 형이었다. 아우를 격려하며 일거일동을 코치와 다름없이 면밀하게 관찰했다.
영흥이는 집에서 카메라와 자기 특유의 관찰력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는 해리더러 멀리뛰기를 하라고 해서 그 장면을 여러 개 찍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해리에게 사진 찍은 목적을 설명했다. 특히 공중에 붕 떠 있을 때 발가락이 땅을 향하는 순간 보여주며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발가락이 하늘을 향하도록 해. 그러면 좀 더 효과를 낼 수가 있어. 점프측정이 좋아질 거라구. 그 말이 맞았다. 호우 코치는 해리의 큰 잠재력을 감지하고 직접 어머니를 뵈러 왔다.
해리가 훈련을 받으려면 김치사업에 드는 시간을 좀 줄여야 되리라는 거였다. 고교생 중에서 달리기를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해리가 훈련에 더 참여하는 건 안 된다고 거절하셨다. 대학 공부와 스포츠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씀이었다. 김치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자 어머니는 좀 더 자신감과 만족감이 생겼다. 쉬프먼씨가 예고없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늘 그 분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땅을 사가지고 김치공장을 차려야 한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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