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언젠가 지금 빌려 쓰는 땅을 팔건데 우리 집 근처의 땅 10에이커를 헐값에 팔 테니 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땅을 거저 주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허나 어머니는 본성이 땅에 마음이 있는 분이 아니었다. 돈은 땅보다 은행에 넣어두기를 더 좋아하셨다. 그래서 쉬프먼씨의 제안을 사양했다. 세를 내고 쓰는 걸로 족하다며.때때로 김치사업은 힘겨운 일이었다. 3~4개월마다 한 번씩 1파인트(0.473리터) 들이 병 수백 개가 들어가는 상자를 주문받으면 4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공장으로 가져다가 적재시켜야 하는데, 그 일을 24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면 추가비용이 엄청나게 부과되었다. 학교공부를 마치고 그 일을 처리하는 게 해리의 임무였다.
그 대형 컨테이너에 실린 수많은 상자들 가운에 서 있는 해리의 모습은 흡사 건초가리 속에 들어있는 바늘 같았다. 해리는 한 번에 상자를 두~세 개씩 들어서 김치저장고에 가져다 쌓고 또 추가금을 내지 않게 시리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하와이가 좋은 게 뭐냐하면, 뚜뚜 맨의 목축장 일꾼들이 하던 일을 중지하고 와서 기꺼이 해리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자기네 대가족의 일부라는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 어느 하나도 영원토록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없는 법.
1956년은 한성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해였다. 몇 년 후 뚜뚜 맨도 은퇴했다. 그가 관리하던 도살장과 목축장은 서서히 철거되었다. 그 대형냉장고는 우리가 여전히 빌려 썼지만. 쉬프먼씨는 끝을 예고하는 질환으로 병석에 누었다. 본토에서 왔다는 어떤 사람이 쉬프먼씨와 접촉을 해서 도살장과 어머니의 김치공장이 붙어있는, 예전에 꽃 도매소로 쓰던 건물까지 몽땅 살 테니 팔라고 했다. 쉬프먼씨는 어머니 사업 때문에 팔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그 본토 사람은 자기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하시는 사업은 창고의 냉장시설을 포함하여 아무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약속했다. 그는 어머니가 같은 자리에 무한정 머물러 있어도 된다고 결론지었다. 쉬프먼씨의 관리자인 디바인씨는 그 말에 만족해서 판매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도살장 전체와 어머니가 일부를 빌려 쓰시는 건물까지 다 그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 후 어느 날 난데없이 해리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쉬프먼씨의 소유지를 구입한 그 본토 사람이 <케에아우 김치> 공장과 도살장의 냉장고를 다 완전히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해리는 그 편지를 들고 그 사람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무직원은 상사의 거짓말과 매정함이 부끄러워 해리의 시선을 피하려고 눈길을 아래로 깔았다. 해리는 다짜고짜 내뱉었다. 이 편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시오. 쉬프먼씨는 이 땅을 팔 적에 우리 어머니가 사업을 계속해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또 당신도 그렇게 약속했잖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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