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제 9장 해리의 군입대
해리는 스무세 살에 벌써 하와이주립대 산하 2년제 Hilo 분교에서 자기 목적에 맞는 학점은 다 이수했다.
팔 남매 중 막내인 그는 호놀룰루의 4년제(대학원 과정도 있는) 본교로 진학하라고 장려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해리의 시간은 모두 사업 아니면 수업에 묶여서 어디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무슨 탈출구를 뚫어야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신병모집소였다.
거기 가서 입대를 시켜달라고 했다.
해리는 그날 지원병으로 분류되어서 예정보다 한 달 빨리 징집되었다.
입대준비로 며칠간의 여유를 얻어가지고 해리는 가까운 친구 허버트를 고용, 어머니의 사업을 경영토록 했다. 훤칠한 키에 군살이 없는 허버트는 성품이 원만해서 그 일에 적격이었다.
푸나(Puna)에서 태어난 그는 이미 우리 김치사업에 관련된 업자들을 많이 알고 있을뿐아니라 부엌일에도 능숙했다. 어머니는 물론 해리를 계속 집에 데리고 있었으면 했지만 나라가 부르는 일에 방해가 된 적은 없었다. 해리의 입대할 차례가 된즉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보내셨다.
해리와 체념 상태에 빠진 청년들 몇 명은 작별인사를 하고나서 근엄한 하사관의 지시를 받았다.
제군들은 이제 군인이다. 호놀룰루에 다다르면 스코필드(Schofield) 기지로 가게 될 것이다. 아마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 청년들은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었다. 하사는 그걸 눈치 채고 해리를 찍었다. 자네가 인솔을 책임지고 동료들이 목적지까지 잘 가도록 한다.
신병들은 그제사 안심했다. 선두자가 생긴데다, 그가 같은 섬 출신이라 더욱 좋았던 것이다. 해리는 웃는 얼굴로, 다들 마음 놓으라구. 걱정할 것 없어. 내 이름은 해리야. 비행기가 호놀룰루에 착륙할 즈음, 그들은 통성명을 다하고 친해진 사이였다.
해리에게 군대생활은 집에서 하던 일보다 수월했다. 휴가를 얻으면 나와 남편을 찾아왔다. 그러다가 조지아(Georgia)주에 있는 Fort Benning 훈련소로 배치되었다.
거기서는 병사들이 여러 가지 다른 전투훈련과 아울러 자기방어법을 배웠다. 어느 날 아침 자신만만하고 자기방어에 능숙한 하사관이 자기와 겨룰 지원자를 구했다. 누구든지 나와서 나를 쳐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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