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수업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울긋불긋한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스승의 날’ 축하 한다고들 했다. 한국의 풍습에 따라 공자의 생신을 스승의 날이라고 축하 받을 때마다 필자는 말 못할 아픔을 느낀다. 바로 일등만을 최선으로 가르친 1975년 서울에서의 첫 담임 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이다. 학생들이 물었다.
“선생님, 생전 장례식 하실 거라면서요?”
“응, 꼭 살아서 장례를 치르고 싶어.”
“아니 선생님, 미리 환갑잔치를 하자는 거였는데 웬 장례식요?”
“왜? 내 초상 음식도 먹고, 유언도 직접 읽고, 누가 제일 서러워하나 체크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내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어서지.”
“와하하 하하…! 아이구! 선생님, 정말이세요?”
이 ‘생전 장례식’은 한국어로 부고와 조사 쓰기, 한국 장례의식과 예절 등을 가르치면서 항상 갖고 있던 생각이다. 그러나 사실은 장례식을 핑계로 사과문 한 장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1971년부터 지금까지 선생으로서 저지른 많은 잘못 중에서 가장 큰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버리는 공개 자아비판(?) 같은 것을 하고 싶다. 공자 왈 군사부일체라고 배우고도 실천은커녕 선생이라는 것을 남용했었던 잘못을 용서받고 싶어서 말이다. 다음과 같이 쓰고 싶다.
1975년 서울 중랑중학교 1학년 13반 학생들에게 올리는 사과문:
본인 정정선은 담임으로서 학급 학생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었고 그 죄를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자’라는 급훈을 걸어놓고 일등만을 고집하면서 일등을 못한 벌을 주었던 야만인으로서 용서를 빕니다. 우리 반이 일등을 했다고 일등 인생이 된 것같이 굴며 일등만이 가치가 있다고 가르쳤던 안하무인으로서 용서를 빕니다. 이등, 삼등이 있고 꼴찌가 있어서 인생이 비로소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 옹졸함, 무리로 떼를 지어 아름답게 어울려 살아가는 인생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본인은 선생의 자격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이 이 학년으로 진급을 하고, 제가 첫 아이를 낳고 난 뒤부터 비로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어머니로부터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깨달으면서 가슴이 뜨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김XX군의 어머니가 중학교 1학년을 학비 때문에 자퇴하겠다는 것을 말리기는커녕 도와주었던 혐오스러운 행동은 가장 큰 제 인생의 오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군사부일체의 진정한 부모가 되지 못했던 이 선생을 나무라 주십시오.
첫 아이가 커 가고 본인의 인생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미국으로 온 본인은 자신이 여러분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더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영어와 미국 문화에 대한 장벽을 뛰어넘지 못해 하러 온 공부가 어려워서 급기야는 전공까지 바꾸면서 본인이 얼마나 열등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런 저를 제 부모님만큼은 항상 위로해 주셨고 자랑스럽게만 생각하셨습니다. 마흔을 훨씬 넘기고 둘째 아이를 낳고, 생의 난항이 계속될 때면 부모였기에 부끄러움도 이겨낼 수 있었고 못난 이민자였기에 더욱 꼴찌의 미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자식들과 학생들이 나침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저지른 ‘최선을 다하여 일등만을 하자’며 벌을 세우던 무지와 과오가 가슴에 걸렸습니다.
이제 환갑 운운하며 학생들에게 떡볶이와 김밥을 만들어 생전 장례식을 치르자고 생떼를 부리는 늙은 저도 두 아이의 부모이기에 등수가 필요 없고 소수민족이기에 모두가 이등이 되어버린 그래서 등수를 따지지 않는 할미로 느릿함을 일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열심히 이렇게 부모님을 그리며 부모가 되어서 다음 세대의 부모들을 아직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1975년 서울 중랑중학교 1학년 13반 학생들이여, 제 인생의 첫 사랑이었던 여러분, 제 사과를 꼭 받아 주십시오.
sunnyjung@eastasian.ucsb.edu
정정선
<시인, UC Santa Barbara 한국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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