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는 날이 다가오면 즐거움의 설렘과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잠을 못 이루던 초등학교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마음에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소풍날이 잡히면서부터 짜증이 날 정도로 집요한 엄마의 설득에 발목이 잡혀 안절부절 못하는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푸른 들로 나아가 가슴이 터져라 소리치며 신나게 뛰어놀 친구들의 모습과 다리가 불편해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어야 하는 내 모습이 비교되며 나도 모르게 살며시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적시고 가슴 속까지 스며들어 밤새 뒤척이곤 했었다.
반별로 서서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야 하는 소풍에 다리가 아픈 내가 가서 다치기라도 할까 봐 엄마는 안쓰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안전사고에 신경을 써야 하는 선생님들께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나를 설득하셔야 했다. 나는 소풍을 포기하는 조건하에 과분한 큰돈을 받기도 했고 6학년 때는 어린아이들이 차지 않은 고급 손목시계를 얻어 차기도 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다 삭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나마 하루 정도 어린 나의 환심을 사기에는 적지 않았다.
해마다 두 번씩의 소풍을 미끼로 낚아 올리던 노획물 중에서 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것은 중학교 때 어른도 갖기 어려운 카메라를 얻은 것이었다. 엄마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셨겠지만 카메라가 일상생활 중에 뭐 그리 대단한가? 사실상 카메라라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사건을 담아 보관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닌가? 난 카메라가 생긴 이후로는 엄마에게 두말도 하지 않고 소풍을 포기한다고 쉽게 말하곤 카메라를 들고 기쁘게 집을 나오곤 했다. 그러나 학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소풍간 친구들을 뒤쫓아 가서 사진을 찍어주고 점심을 얻어먹는 엉뚱한 짓을 하곤 했다.
소풍과 바꾸기 위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물건은 해마다 커져야 했고 결국 엄마가 원하는 대로 되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을 엄마가 쫓아오는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부모들일수록 쉽게 자녀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물품공세법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햄버거 등을 사주고 좋은 성적을 받으면 자전거나 컴퓨터 게임기를 구입해 주고 부모의 가사 일을 도우면 일정 금액의 보수를 주는 방법들이 얼마나 우리 주변에 흔한지 볼 수 있다. 얼른 보면 자녀들이 그것을 위해 부모가 원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 같으나 사실상 오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상품은 쉽게 가치를 잃어버린다.
수잔 하터(S. Harter) 박사는 아동이 최대한 동기유발이 되도록 하는 방법은 자신의 성취감에 만족을 느끼고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내적 보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자녀의 나이와 능력에 적합한 일들을 맡겨주어 책임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아동이 완수해 냈을 때 바로 금전이나 물품과 같은 외적 보상을 주기보다 칭찬과 포옹, 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여 최고임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보상을 주는 것이다.
용돈과 게임기 등은 계획적으로 필요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구입해 주고 자녀가 자신을 위해 스스로 해야 하는 공부나 가족의 일원으로 책임져야하는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인정인 것이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