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생각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 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 그르렁 물어 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제 밥그릇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내려 가다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이덕규(1961~) ‘밥그릇 경전’ 전문
나도 경전을 읽었다면 제법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강물이 펼쳐 보이는 물결의 경전, 썰물 막 빠져나간 백사장에 찍힌 도요새 무리의 발자국도 경전, 파랗고 단단하게 빛나는 풋대추열매의 경전, 이슬방울 경전은 물론이요 시커멓고 고들고들한 보리밥풀떼기 경전까지도. 그러나 아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개밥그릇 테두리에 박혀있는 경전까지는 보아내질 못했다. ‘잘근잘근 씹어 외운/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박혀있는’ 그 기가 막힌 경전까지는.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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